[인문사회]지구 한 바퀴 ‘속담 여행’, 에피소드 곁들이니 지루할 틈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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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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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인류학/요네하라 마리 지음·한승동 옮김/312쪽·1만4000원·마음산책

일본 교양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의 저서들. 마음산책 제공
일본 교양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의 저서들. 마음산책 제공
살짝 야한 각국의 속담들을 맛나게 버무려낸 ‘속담 인류학’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 제공
살짝 야한 각국의 속담들을 맛나게 버무려낸 ‘속담 인류학’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 제공
성인이 아닌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성인이라 하더라도 적나라한 ‘남녀상열지사’ 식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은 건너뛰고 읽기를 권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세상의 속담에 대한 이야기다. 속담 그 까짓것이 얼마나 재미와 감동을 주겠는가. 맞는 말이다. 속담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것들이어서 신선한 맛이 덜한 것이 속성이다. 그런데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비슷한 속담을 재미난 말재주를 양념 삼아 잘 버무렸다. 마치 약간 묵은나물이나 김치로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 듯.

그 비빔밥의 주요 재료 중 하나가 ‘성인용 담화’다. 모두 29개로 나뉜 토막글의 첫 부분마다 가벼운 에피소드로 시작하는데 여기에 야한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옛날 어느 왕국의 비열하고 소심하지만 야심만만한 재상이 왕비의 젖가슴을 탐냈다. 그것을 자신의 혀로 핥았으면 하는 욕망이 너무 커져 결국 병까지 얻었다. 자신의 병을 진찰하던 왕실 의사에게 결국 마음속 욕망을 털어놓게 되고, 그 의사의 잔꾀로 마침내 소원을 풀게 된다. 그러나 약속했던 금화를 의사에게 주지 않는 바람에 의사는 다시 꾀를 부렸고, 재상은 왕의 사타구니를 핥게 되는 상황에 처해 2인자의 신세를 한탄한다. 이런 이야기로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마라’는 속담을 풀어내는 식이다.

저자는 ‘역사도, 지리적·기후적 조건도, 문화도 전혀 다른데 같은 문구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며 각국의 비슷한 속담을 훑는다. 유럽의 관용구집에서 ‘시골에서 일인자가 되는 게 도시에서 이인자가 되는 것보다 낫다’를, 터키계 유목민족인 위구르에서는 ‘황소 다리가 되느니 송아지 머리가 되는 게 낫다’를 찾아내 소개한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에서는 그와 비슷한 표현을 러시아와 프랑스 사전에서도 찾아내고, 연원을 좇아 기원전 6세기의 이솝우화까지 찾아간 뒤, 그 연원은 다시 이집트나 중국 인도 등일 수 있다며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속담을 좇으면서 동서양의 유명한 사건과 인물을 접하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플루타르크와 사마천은 역사가라기보다는 교훈이 될 만한 소재를 역사 속에서 찾아낸 이야기꾼이라며 비교해 소개하는가 하면 공자와 도연명, 키케로, 호라티우스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시키는 재주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흠이라면 우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 대부분의 글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를 욕보이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한창일 때 저자가 일본 잡지에 연재한 것을 모아서 책을 엮었기 때문이다.

2006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러시아어 동시통역사 겸 작가였던 저자는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미식견문록’ ‘교양노트’ 같은 술술 읽히는 교양서를 여럿 발표했고 ‘요미우리 문학상’ ‘고단샤 에세이상’ 등을 받았다.

읽다 보면 저자의 재치 있는 글의 구조나 표현 때문에 곳곳에서 웃음이 ‘빵’ 터진다. 저자의 다른 책 제목에서 따온 표현을 빌린다면 최소한 ‘인간 수컷’에게는 그렇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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