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지구촌 새권력/러시아]<上>3선 푸틴의 국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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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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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부정선거’ 항의 시위 확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6대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5일 오전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인 쿠투좁스키 거리에선 자동차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거리는 크렘린의 고위층이 지나다니는 통로. 고위층 차량이 지날 때는 경찰 차량이 청색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고위층이 탄 검은색 외제 차량을 앞뒤에서 에스코트하고 교통경찰들이 다른 차량의 통행을 막는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차 안에서 기다리며 혼잣말로 불평을 늘어놓았을 운전자들이 이날은 유독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이날 오전 고위층 차량이 지나가 통행이 통제될 때마다 경적 소리가 되풀이됐다.

8년 전인 2004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선될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이다. 푸틴 당선에 대한 불만, 그리고 더는 권력 측의 특권 앞에서 굴종하지 않겠다는 중산층 시민들의 태도가 반영된 ‘경적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4일 대통령 선거 집계 결과 푸틴은 63.60%(개표율 99.97%)의 지지를 얻었다. 2004년 재선 때의 68.61%보다 낮아졌으며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48.7%로 반수를 넘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총선 부정 시비가 불거진 후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져 이번 대선에서 득표율이 반수를 넘지 못해 2차 결선 투표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빗나간 데 대해 푸틴은 안도하고 있다.

5일 모스크바 거리에서 휴대전화를 든 시민 중에는 “오늘 밤 푸시킨광장에서 열리는 집회 시간이 몇 시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러시아 야권은 오후 7시부터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일부는 “집회장 주위에 텐트를 쳐놓고 장기 시위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러시아판 점령 운동’의 불쏘시개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푸틴의 3선 집권에 반대해 온 야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지난해 총선에 비해 한층 강화되고 조직화된 선거 감시 활동을 폈다. 선거참관인 1만여 명을 조직해 투표소에 파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한 시민들은 현장에서 포착한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된 물증을 선거가 끝난 뒤 선거감시 자원자 단체의 통합 웹사이트(control2012.ru)에 올렸다. 감시단이 올린 선거부정 의심 사례는 모스크바에서만 2700건이 넘는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시민들은 ‘회전목마 방식의 부정 투표’가 집중적으로 자행됐다고 전한다. 러시아에선 부재자 신고를 하면 투표용지를 미리 받아서 투표 당일 거주하는 곳의 투표소에 가서 투표함에 넣으면 되는데, 이날 실제 부재자가 아닌 사람들이 일당을 받고 버스를 타고 투표소마다 돌아다니면서 가짜 부재자 투표를 한 것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부재자 투표를 하는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버스의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독립 선거감시기구인 ‘골로스’의 부소장 그리고리 멜코냔츠는 “이번 대선의 부정 사례로 볼 때 사실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당선 첫날부터 축하 인사를 받기는커녕 대신 비등하는 선거 부정 항의와 야권 시위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에 싸였다. 알렉세이 마카린 모스크바 정치공학센터 부소장은 “푸틴이 시위를 강경 진압한다고 해도 모스크바에서의 저항의 열기는 여름휴가 전까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푸틴이 5월 취임 때까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통해 야권과 타협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5일 의회에 진출하지 못한 야권 지도자들을 계속 만나겠다는 약속과 함께 2007년 푸틴 대통령 재직 시설 구속된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검찰에 지시했다. 호도르콥스키는 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의혹 때문에 푸틴 사단의 미움을 받던 인물이다.

푸틴 사단이 일정한 수준의 정치개혁을 한다 해도 5월 이후에는 ‘뜨거운 감자’들이 숱하게 널려 있다. 지금까지 대선 때문에 올리지 못한 전철 가스 휘발유 요금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가을 공공요금을 올리는 순간 시위가 지금보다 더 확산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푸틴이 2018년 4선 도전은커녕 민주화 요구를 무시하다가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6년 임기도 못 채우고 중도 하차할 것이라는 ‘괴담’도 나오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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