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투구폼 내가 봐도 희한… 타자들도 헷갈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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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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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리즈 MVP ‘끝판대장’ 오승환


삼성이 1-0으로 앞선 한국시리즈 5차전 9회초. 타자 둘을 범타 처리한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은 마지막 타자 정상호를 상대했다.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1볼. 승부구는 뻔했다. 오승환은 직구를 생각했고 정상호도 직구를 예상했다.

오승환의 손을 떠난 직구에 정상호는 힘껏 방망이를 갖다댔다. 하지만 방망이는 산산조각이 났고 타구는 3루수 앞 땅볼이 됐다. 오승환의 별명인 ‘끝판대장’다운 마무리였다. 그는 한국시리즈 1, 2, 5차전 위기 상황마다 등판해 모두 세이브를 챙기며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 콤플렉스가 장점으로

오승환은 직구 투수다. 그가 위기의 순간 던지는 공이 직구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알고도 못 친다. 공이 묵직하기 때문이다. ‘돌직구’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었다. 독특한 투구폼 때문에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점도 있다. 오승환은 디딤발인 왼발을 내디딜 때 짧게 땅을 스치듯 하다가 다시 스트라이드를 한다. 이른바 합법적인 이중 키킹이다.

오승환은 야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작으로 공을 던졌다. 대학 때까지 감독, 코치는 물론이고 스스로도 이를 고쳐보려 부단히 애를 썼다. 투구폼이 매끄럽지 못해 부상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투구폼이 철벽 마무리 오승환을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요즘도 TV로 내 투구를 볼 때 스스로 놀라곤 한다. 어떻게 저렇게 던질 수 있나 싶다. 던질 때는 자연스러운데 객관적으로 보니 타자들이 타이밍 잡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폼은 영원히 미완성일 것”이라며 웃었다.

○ 긍정의 힘

올 시즌을 앞두고 오승환이 이렇게까지 잘할 거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때 최고의 마무리였지만 지난 2년간은 부상으로 평범한 투수가 돼 버렸다. 지난 시즌 중반에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까지 받았다. 스스로도 “마무리가 안 되면 불펜으로라도 힘을 보태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구위가 기대 이상이었다. 한창 좋았던 2006년보다 더 좋은 공이 나왔다. 스피드건에 직구가 최고 시속 154km를 찍기도 했다. 오승환은 “대학 때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재활을 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수술할 때 뼈를 깎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이것만 이겨내면 다시 공을 던질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그가 수술한 지 1년도 안 돼 건강하게 돌아온 건 이례적인 일이다. 류중일 감독 역시 “물음표였던 오승환의 복귀가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 정규시즌 MVP에 도전장

정규시즌에서 1승 47세이브 평균자책 0.63을 기록한 그는 한국시리즈에서도 3세이브를 따내는 동안 1점도 내주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MVP를 넘어 정규시즌 MVP에 도전하기에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구원 전문 투수는 아직 한 번도 MVP가 되지 못했다. 올해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선발 투수로서 4관왕에 오른 KIA 윤석민이다.

오승환은 “인터뷰 때마다 구원 투수로서 MVP를 받을 수 있느냐는 말을 많이 했다. 이건 선발 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불펜 투수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투수라면 누구나 선발을 원한다. 마무리 투수나 불펜 투수도 그 못지않은 활약을 할 수 있고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민이와 MVP 경쟁을 한다는 자체가 구원 투수인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석민이도 워낙 좋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내가 상을 못 받아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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