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훈]初有의 斷電사태에 책임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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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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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
15일 발생한 정전사태는 국민에게 큰 불편을 끼쳤고 중소기업에는 막대한 손실을 입혔으며 대외적으로 한국 산업 인프라의 허점을 드러낸 불상사였다. 일각에서는 이상고온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 때문이라며 자연재해처럼 해명하지만 실상은 상황 판단 착오로 야기된 인재였다. 40년간 한국전력에서 발전 송전 배전 업무를 담당했던 필자는 단전사태의 원인과 대응의 적정성 평가를 통해 재발 방지를 위한 조언을 하고자 한다.

상황 판단 착오로 인한 人災

왜 예비전력을 가지고 전력계통을 운영해야 하는가? 이런 예측하지 못한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140만 kW 이상의 예비전력을 남겨둔 상태에서 전국 정전이 생길까 두려워 단전했다고 15일 밝혔는데 이는 전력계통 운영의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처사다. 이번 이상고온은 수일 전에 예고됐다. 당일 부하 증가가 예측됐다면 전력거래소는 발전소에 긴급 추가 가동을 요청했어야 했다. 정지 중인 수력발전기는 1분, 세워둔 가스터빈발전기도 30분이면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예비율이 바닥을 쳐 발전출력이 모자라면 발전기는 힘이 부쳐 회전속도가 떨어지고 주파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부하가 급감하는 특성이 있다. 주파수가 59Hz(헤르츠)에 이르면 각 변전소에 있는 저주파계전기(UFR)의 작동으로 부하 차단이 돼 전국 정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상상황이 예견되면 방송사에 요청해 긴급 특보를 내보내고 냉방부하를 줄이도록 시민의 협조를 구하는 한편 한전 직원을 총동원해 대형빌딩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필자는 이런 적극적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전력요금은 30년간 20% 남짓한 상승에 묶여 과소비를 불러온 책임도 피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이 싼 나라는 없다. 우리 전기요금을 1.0이라 할 때 주거부문은 일본이 2.96배, 독일이 4.19배, 산업부문도 일본이 2.72배, 독일이 1.88배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들 나라의 절반 수준인데 1인당 전기사용량은 25%나 더 많다. 가스와 석유 가격은 국제시세를 반영하고 전기요금은 묶어둬 에너지 소비가 왜곡된 탓이다.

필자는 정책적인 과오로 인한 전력산업 운영의 취약점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의 한 방편으로 전력산업 구조조정을 하며 한전의 발전설비를 분리해 6개 회사로 분할하고 전기를 고객에게 공급할 책임이 있는 한전 사장의 통제에서 이들을 배제시켰다. 전력 공급의 두뇌와 신경 격인 한전 급전지령소는 지식경제부 산하 전력거래소로 이관했다. 전력거래소는 발전소 건설 운전 정지 보수 계획을 통제하게 됐다. 지난달 퇴임한 한전 사장이 이 같은 불합리를 바로잡고자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불합리한 전력산업 바로잡아야

필자는 한전 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1994년 7월 11일부터 15일간 34도를 웃도는 폭서에도 예비전력 80만 kW로 제한 송전 없이 버틴 경험이 있다. 1kW의 전력이라도 더 생산하려는 발전소 직원들의 의지와 전국의 대형 수용가를 찾아다니며 냉방부하를 줄이도록 설득한 직원들 덕에 위기를 넘겼다. 지금은 전력 공급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전력거래소가 단전을 요청한다고 중대 사태를 예견치 못하고 단전하고 다닌 한전 경영진의 무신경도 한심한 수준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전력거래소, 발전소, 한전이 서로 네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수용가의 손해배상 소송은 필시 한전으로 집중될 것이다. 이를 지휘할 한전 사령탑은 공교롭게도 공석이다. 평소 안 드러나던 문제가 이런 때 노출되기 마련이다.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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