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밋밋한 캐릭터 지루한 멜로디… 졸작 분명한데 관객은 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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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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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파이더맨’
무대 ★★★☆ 연출 ★★☆ 연기 ★★☆ 음악 ★★☆

뮤지컬 ‘스파이더맨: 턴 오프 더 다크’에서 철사에 매달려 공중 묘기를 펼치는 스파이더맨은 스턴트맨들이다. 스파이더맨 공중 연기를 위해 한 공연에 8명의 스턴트맨이 동원됐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뮤지컬 ‘스파이더맨: 턴 오프 더 다크’에서 철사에 매달려 공중 묘기를 펼치는 스파이더맨은 스턴트맨들이다. 스파이더맨 공중 연기를 위해 한 공연에 8명의 스턴트맨이 동원됐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엄청난 돈을 들인 졸작을 뜻하는 말이 뭐더라. 사전을 뒤질 필요는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스파이더맨: 턴 오프 더 다크’를 보면 된다. 혹평이 쏟아진 이 뮤지컬을 25일 관람하고 나니 이 뮤지컬이 이런 뜻으로 웹스터 사전에 오르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파이더맨’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 최대 제작비(7000만 달러)를 들였지만 그 외에도 화젯거리는 많았다. 무려 183회의 프리뷰(정식으로 개막하기 전 올리는 공연)에 출연진의 공연 중 사고가 잇달았고 급기야 3월 연출가(줄리 테이머)까지 경질됐다. 일부 수정해 ‘달라진 스파이더맨’이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6월 15일 정식 공연을 시작했다.

피폭된 거미에 물린 소년이 초능력을 갖게 되고 악당과 싸워 이긴다는 스토리가 너무 단순하다고 여긴 탓일까. 이 뮤지컬은 미국 ‘마블스 코믹’ 원작에는 없는 그리스 신화 속 아라크네 여신의 이야기를 삽입했다. 아라크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베 짜기 시합으로 도전했다가 거미가 된 여인으로 이 뮤지컬에서 스파이더맨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지만 이런 설정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꼽을 만한 강점은 미국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무대미술이다. 빌딩 숲을 비롯한 배경들을 흑백 톤의 만화풍으로 표현한 것이나, 만화 속 분할된 칸처럼 무대에 사각형의 또 다른 액자 무대를 등장시킨 것은 신선한 느낌을 줬다.

하지만 캐릭터들은 일관성이 없고 밋밋하다. 형형색색 의상에 대형 마스크를 쓴 악당들은 어린이 프로그램 속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대결구도를 강화시켰다는 스파이더맨의 숙적 ‘그린 고블린’(패트릭 페이지)은 심지어 피아노를 치고 노래까지 하는 귀여운 장면을 연출하며 커튼콜 때 어린이 관객에게 가장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지상 최대의 공중 쇼’라는 선전이 무색하게 볼거리도 기대 이하였다. 피터 파크(리브 카니)가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해 2층 객석 위까지 날아오르는 장면은 극이 시작한 지 45분이 지난 시점에 나온다. 그나마 스태프들의 큐 사인을 기다리느라 바닥에 웅크린 자세로 1분 넘게 뜸을 들였다.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며 날아다니긴 하지만 배우 몸에 여러 겹의 와이어를 부착한 티가 너무도 역력했다. 스파이더맨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거미줄은 쭉쭉 뻗어나가지 못하고 가느다란 종이테이프를 뿜어내는 느낌을 줬다. U2의 리더 보노와 기타리스트 디 에지가 작곡한 뮤지컬 넘버들은 비슷비슷한 멜로디로 지루함을 배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뮤지컬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광팬에게만 관람할 것을 권한다. 10세 안팎의 아이와 버려도 상관없는 수백 달러가 수중에 있다면 아이를 데려갈 만하다”고까지 혹평했다. 하지만 이런 혹평이 무색할 만치 흥행전선엔 이상이 없어 보였다. 평일 저녁 공연도 표가 없어서 못 팔고 공연장 로비에서 파는 80달러짜리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린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일단 화제작이라면 아무리 졸작이라도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뉴욕=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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