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정책연구소 해부]<하>연구할 틈 없는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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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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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61% 한달만에 뚝딱… “보여드리기가 창피합니다”

“미안합니다. 공개할 만한 보고서들이 없습니다.”

동아일보가 9개 정당 정책연구소에 지난해 자체적으로 작성한 보고서 중 가장 자신 있는 보고서 5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자 한 연구소는 이같이 털어놓으며 손을 내저었다. 다른 연구소들도 2, 3개의 보고서만 제시했다. 겉으로는 “비공개 사항이 많다”고 밝혔지만 한 관계자는 “상당수 연구가 언론 보도나 다른 논문 짜깁기 수준이라 공개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 비전 연구는커녕 현안 막기에 급급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지난해 10월부터 비전위원회를 가동해 9개월간의 ‘한나라당 뉴비전’ 연구 작업 끝에 10대 핵심과제를 담은 초안을 이달 20일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장기 프로젝트는 정당 연구소에서는 드문 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0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당 연구소의 전체 보고서 중 연구기간이 1개월 미만인 경우가 전체의 61%로 가장 많았다. 1년 이상 걸린 연구는 전체 304건 중 1건뿐이었다.

한 연구소 관계자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계속 내라고 하니 내부 연구원들은 장기적인 과제를 연구할 틈이 없다. 돈이 부족하다 보니 외부에 용역을 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연구소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10∼20쪽 안팎으로 현안을 요약한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2쪽짜리 보고서도 여러 개 있었다. 연구소에서 발행해 대중에 판매한 간행물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가 펴낸 ‘리얼진보’가 유일했다.

○ 중앙당의 거수기로 전락

정당법에 따라 정당 연구소는 별도 법인으로 설치돼야 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당이 연구소에 적극 개입하게 되면 중앙당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한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정당은 국고에서 지원하는 경상보조금 30%를 의무적으로 연구소에 할당하도록 돼 있지만 이 돈은 정당을 통해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연구소는 매번 눈치를 봐야 한다. 나머지 수입도 대부분 당에서 지원하는 금액으로 충당된다. 소장은 정당이 임명하는 당직이고 직원도 당에서 파견된 인력이다. 정책도 정당이 추진하는 정책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급급하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올해 “경상보조금 30%를 중앙당이 아닌 연구소에 직접 보조해야 한다”는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내놓았다. △현역 국회의원의 연구소 책임자 취임 금지 △중앙당 인사 파견을 제한하는 중앙당 인력 쿼터제 도입 등의 대안도 제시했다.

동아일보는 9개 연구소에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여의도연구소는 “연구소가 후원회를 두고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되 선관위의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연구소들은 주로 “국고배분 공식을 바꿔 소수 정당을 배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선관위는 “각 연구소의 실적을 평가해 그 평가결과를 근거로 다음 해 국고보조금 지급에 참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김대원 인턴기자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 청년층 잡기… 통일외교… 연구소 ‘선택과 집중’ ▼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취약계층인 20, 30대 청년들의 교육과 연수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연구소가 2006년부터 운영하는 청년미래포럼의 경우 지난해 정책개발비 중 1억3150만 원을 사용했다. 청년미래포럼은 강연, 타운미팅, 캠프, 아이디어 공모전 등의 활동을 벌였다. 여당 연구소인 만큼 연구과제는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논란, 전시작전권 전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정부 주도 정책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의 경우 지방선거 공약, 뉴민주당 플랜 등 한 주제를 파고드는 ‘선택과 집중’의 특징을 보였다. ‘오바마 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 ‘브라질 노동운동과 룰라 정부’ 등 외국 사례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야권연대를 연구하는 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지방선거 이후 부산정치지형의 변화와 민주당의 과제’ 등 선거 승리 전략 수립에 연구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는 남북, 한미 관계 등 통일외교통상 분야(18건)에 집중했다. 매달 새세상연구소 웹진과 진보국제리뷰, 여성웹진을 작성해 e메일로 배포하는 등 온라인 소통에 집중하고 있었다.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 자유정책연구원과 국민중심당 국민중심정책연구원은 지역균형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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