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은애]옷, 첨단과학의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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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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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애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교수 한국의류학회 회장
김은애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교수 한국의류학회 회장
크리스토퍼 힐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2000년 이후를 ‘과학 이후 시대’로 구분했다. 재화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새로운 과학적 지식보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영업 형태, 소비자 개인의 패턴 등 문화에 더 의존한다는 의미다.

산업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섬유산업은 시대의 큰 사조가 변하는데도 재화와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의류가 백화점 전체 매장의 65% 정도를 차지하는 게 증거다. 산업사회 혹은 정보사회에도 농작물의 생산이 중요한 것과 같다.

최근 섬유산업은 나일론 개발 이후 고어텍스 등 첨단소재를 사용하고 단순 용도에서 기능성 의류와 산업섬유로 확장하는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옷이라고 하면 누구나 패션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패션에 앞서 옷은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체온 조절 역할이 우선이다. ‘제2의 피부’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 몸에 밀착돼 있고 가지고 다니는 환경이라고 할 만큼 주위 환경과 다른 미세기후를 만들어 체온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한다. 소방복이나 생화학 방호복같이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은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 전투복이나 우주복같이 극한환경에서도 옷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주복은 어린아이들한테는 그저 하얗고 반짝거리는 정도의 상상의 옷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복은 최첨단 과학의 집합체다. 극한 상황에 필요한 옷이 아니더라도 최근 의류산업은 융·복합 기술에 따른 첨단과학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신문 등에서도 첨단과학을 이용해 만든 기능성 옷 광고를 자주 본다. 그만큼 시장이 크다는 얘기다.

최근 의류산업계는 나노, 바이오, 정보, 문화, 스페이스 등 인접 분야와 접목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고 있다. 나노 기술을 활용한 극세사나 나노튜브, 은나노 항균제 등은 이미 소비자에게 익숙하다. 친환경 제품의 개발도 다양하다. 유기농 면이나 착색 면뿐 아니라 누에에게 뽕잎과 함께 형광염료를 먹이면 현란하고 아름다운 핑크 착색실크를 생산해 물을 절약하고 염색 과정을 줄일 수 있다. 누에의 먹이를 조절하면 실크가 항균성 응고성 소염성 등의 성질을 갖게 돼 수술실 등의 의료용으로도 쓸 수 있다.

섬유의 표면구조를 바꾸면 물이나 오염이 저절로 굴러 떨어지는 연꽃잎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효과를 활용하면 때가 타지 않는 옷,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옷이 가능하다. 섬유의 표면을 특수 처리한 옷을 햇볕에 말리면 옷에 묻은 오염물질이 자연분해되는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이 기술이 보편화되면 주부에게서 환영받을 것이다. 전투복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면 전투력을 배가할 수 있다. 전투복에 심전도 센서를 부착해 군인의 심박수 변화 등 건강상태를 측정하고 전도성 고분자로 만든 섬유로 모니터 등 통신장비를 부착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정보기술의 이용은 의복의 구매 과정도 스마트하게 바꿀 수 있다. 의류매장의 고객정보 관리시스템에 개인정보를 저장해 두면 사이즈와 함께 경제력과 취향, 용도에 맞는 옷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이렇게 얻은 정보로 만약 고객이 다른 매장에서 옷을 구매하더라도 최초로 선택을 도와준 점원이나 점포에 이익의 일부를 부여하는 시스템도 개발했다. 옷에 나의 정보를 입력하고 내 옷장에 어떤 옷이 있는지, 어떤 옷을 더 필요로 하는지 검색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옷의 과학은 예술적 디자인을 소비자 패턴과 연계한 융합학문으로 역사가 오래됐다. 힐 교수가 예측한 과학 이후 시대의 시대상과 잘 맞는다. 옷의 과학을 아는 것은 삶의 과학을 아는 것이고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첫걸음이다.

김은애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교수 한국의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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