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성낙준]난파선은 ‘바닷속의 타임캡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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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우리나라의 난파선 발굴은 중국의 송·원대 도자기를 실은 무역선인 ‘신안선’ 발굴이 효시다. 35년 전인 1976년 어부의 신고와 도굴범 체포로 알려진 신안 해저 유물 발굴은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다.

심한 조류와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닷속에서 고난도 수중 발굴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은 이순신 장군의 후예다운 해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해군 심해 잠수사들의 목숨을 건 발굴작업은 한국 수중 발굴의 화려한 서막을 장식한 쾌거로 길이 기억해야 한다. 9년에 걸친 신안 해저 유물 발굴 성과는 우리에게 국립광주박물관과 해양유물전시관(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이라는 두 개의 멋진 박물관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신안선에서 고급 도자기 2만여 점이 포장상자에 담긴 채 인양됐다. 중국 동전 28t과 스리랑카에서 많이 나는 자단목 1000여 본은 배의 바닥에 깔려 있었다. 배 밑에 동전과 물에 가라앉는 무거운 자단목을 실은 것은 항해 때 배의 밸런스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신안 해저 유물 발굴 성과의 화려함 뒤에는 사악한 그림자도 있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굴꾼들이 발굴기간 내내 암약했다. 수사기관이 신안 해저 유물 도굴범을 검거했다는 소식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압수된 유물만 2000여 점이니 도굴꾼들이 얼마나 활약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76년 ‘신안선’ 이후 240건 신고

한이 서린 난파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검거된 도굴범들은 거의 패가망신하거나 정신분열, 자살, 가정 해체 등 불행을 겪어 ‘난파선의 저주’라는 풍문마저 돌았다. 여기에 더해 도굴범 검거로 공을 세운 수사관들마저 불행이 잇따르면서 수사 기피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 사이 국외로 빠져나간 도굴품이 없지 않을 것이고, 아직도 장롱이나 지하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공소시효가 지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있는데 유명 사립대 박물관에는 상당량의 1급 신안 해저 유물이 소장돼 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 전통사회에서 대량의 물류 유통은 바다를 통해야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외부 세계와의 교류와 접촉은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다. 바다에서의 조난사고는 수없이 일어났고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꺼번에 수십 척이 난파됐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얼마나 심했으면 운하를 파서 조난을 방지하려고 했을까. 조난사고는 때로 흔적을 남기기도 하는데 우연하게 발견된 해저 발견 매장문화재 신고가 240건에 이른다. 신고 해역은 거의 삼남지방의 물산을 실어 나르던 조운 항로상에 있다. 해안과 도서지역에 대한 개발은 때로 바다의 물길을 바꾸기도 한다. 그동안 바다 밑 뻘 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유물들이 침식작용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노출된 선체는 해충의 밥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이 방조제 공사가 재개되었을 때 환경단체들은 공사 재개 반대를 위한 각종 자료를 모아 타임캡슐을 묻었다. 10년이 지난 엊그제 ‘새만금타임캡슐, 그 후 10년을 기억하다’라는 행사를 준비하며 묻어둔 타임캡슐을 굴착기를 동원해 팠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타임캡슐은 한 시기나 특정한 자료를 담아 온전하게 전해준다는 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역사적 증거물이자 정보 상자이다. 육상의 유적은 대부분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남지만 바닷속의 난파선은 한 순간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타임캡슐이다. 비안도와 야미도 해저 유물 발굴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의 산물이다. 앞으로도 이 해역에서는 뜻하지 않은 수중 발굴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바뀌는 물길의 영향으로 침식과 퇴적이 반복되면 유물은 노출되기 마련이다.

충남 태안 해역에서는 네 번째 난파선을 발굴하고 있다. 마도해역은 가히 바닷속 경주요, 난파선의 공동묘지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난파선이 발견될지 기대된다. 태안 해역의 수중 발굴은 2007년 시작됐다. 강진에서 생산한 약 3만 점의 고급 청자를 가득 싣고 개경으로 가려던 배가 안흥량 초입의 대섬 해역에서 난파된 ‘태안선’ 발굴을 필두로 마도 1·2호선을 발굴하였다.

난파 당시의 역사 정보 가득 담겨

마도 1·2호선은 남녘에서 수확한 곡물과 먹을거리를 개경으로 운반하다 난행량의 드센 물살에 난파된 배다. 특히 마도 1호선은 화물표인 목간과 죽찰을 통해 1208년 봄에 난파되었음이 확실해졌다. 즉, 정확한 난파 시점과 더불어 대장군 김순영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흥미를 더하고 있다. 김순영은 최충헌 집권 시기 낭장벼슬에 있다가 사위 형제의 모반을 눈치 채고 최충헌에게 밀고함으로써 승진을 거듭한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마도 2호선에는 대경벼슬의 무송 유씨가 보이는데 대경을 지낸 유자량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마도 1·2호선은 1200년 무렵의 역사 정보를 가득 담은 타임캡슐이다. 갓 건져낸 캡슐에 담긴 정보의 갈무리 작업은 앞으로 우리의 몫이다.

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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