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선정]큐레이터로 산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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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독립 큐레이터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독립 큐레이터
무척 이른 파리의 아침이다. 오전 4시인 것 같다. 오늘은 좀 더 늦게 일어나려 했는데 시차 때문에 잠이 깨버렸다. 오늘 저녁 한국 작가들의 비디오 작업을 상영하면서 소개하는 강연이 퐁피두센터에서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비디오들은 얼마 전 퐁피두센터가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외국 미술관의 컬렉션 자문을 몇 차례 했는데 이는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미술관에서 전시될 좋은 기회다. 비디오 작업을 컬렉션하는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물기 때문에 한국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최근 많은 예술가가 필름이나 비디오를 매체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지만, 비디오 작업은 만들기 힘들고 지원도 많지 않아 작가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퐁피두센터가 한국 작가들의 비디오 작업 소장을 결정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큐레이터는 방송 프로듀서나 영화감독 같은 매개자 역할을 한다. 현대미술 기획의 경우 작업 내용이나 제작 과정에 대해 작가들과 이야기하며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공유한다. 작가들과 프로젝트에 필요한 책을 찾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현장을 살펴보는 등 리서치를 같이하기도 한다.

올해 11월 열릴 예정인 한 전시는 서울을 모델로 도시의 지속적인 자가발전이나 이상적인 도시 계획 수립의 가능성을 묻는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근대 건축사가와 디자이너, 예술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만들고 도시 담론에 대한 책을 읽거나 관련 지역을 답사하는 등 여러 리서치를 한다. 전시에 맞는 작업 선정뿐 아니라 작업 내용에 대해 작가들과 지속적인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방송이나 영화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이 배우를 선정해 영화를 찍는 것과 비슷한 작업 방식이다. 완성된 영화가 영화관이나 TV를 통해 상영되듯 준비된 전시의 결과를 전시장에서 보여주게 된다.

작가들과 아이디어-콘셉트 공유

대부분의 현대미술 전시는 마치 독립영화처럼 내용이 전문적이거나 예술적이어서 관객들이 어렵게 느낄 때가 많다. 홍보나 마케팅 부족 같은 여러 이유로 일반 관객이 정보를 얻기 힘들 때도 있다. 현대미술 작가들이 새로운 시각 언어를 사용하거나 관객과 거리 두기를 원하기 때문에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 사이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큐레이터는 흔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전시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하지만 최근에는 강연이나 미술관, 박물관의 정책이나 소장 및 프로그램의 자문 등에 참여하기도 한다.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어 미술관의 프로그램도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있기에 다른 나라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기획에 참여하는 일도 있다.

외국 미술관, 특히 미국 미술관의 전시는 준비 기간이 3∼5년이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의 ‘당신의 밝은 미래(Your Bright Future)’전은 2005년부터 준비해 2009년 전시를 열었고, 휴스턴미술관(MFAH)으로 순회해 2010년 전시가 종료됐다. 지금 일하고 있는 ‘다큐멘타(Documenta)’는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전시인데, 2009년 일을 시작해 2012년 6월 초 전시가 시작되기까지 3년 반 정도를 일하게 된다. 전시 내용이나 작가의 작업에 대해 같이 일하는 큐레이터들과 함께 의논하며 전시를 만들고, 작가가 새로운 작업을 할 경우 그들과 작업 과정을 공유하며 진행한다.

보통 큐레이팅에 참여하는 해외 전시의 경우 외국의 미술관이나 기관에서 계획하여 게스트 큐레이터로 초청을 받아 일한다. 정부나 국가기관에서 수교 기념 등 특별한 이벤트의 하나로 전시를 열기도 하는데, 이때는 지역이나 관객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 해외 미술기관과의 교류로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서로 소개하고, 나아가 한국의 동시대 미술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전시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전달

큐레이터는 전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이야기는 다수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 점이 있다. 미술 자체만을 다루는 것을 넘어 다른 학문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전시기획을 가르치면서 항상 강조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큐레이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기관에 소속돼 일을 하지만, 필자는 현대미술이 가진 현장성을 더 가까이에서 접하고자 특정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 큐레이터는 전시가 있을 때마다 적합한 장소를 새로 찾아야 하고 전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기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보다 자유롭게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 작가들과 함께 풀어내는 이 이야기들이 고정되지 않고 활발히 진화하는 유기체처럼 관객들과 만나길 기대한다.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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