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볼거리 풍부해도 캐릭터 구축 미흡 관객공감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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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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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키친’
무대 ★★★★ 대본 ★★★ 연기 ★★★ 연출 ★★★

연극 ‘키친’은 무대를 가득 채운 30명 가까운 배우가 동시에 움직이며 역동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국립극단 제공
연극 ‘키친’은 무대를 가득 채운 30명 가까운 배우가 동시에 움직이며 역동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국립극단 제공
대형 레스토랑의 주방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무대와 29명이나 되는 출연 배우. 개막 전부터 큰 스케일로 관심을 모았던 국립극단의 두 번째 정기공연 ‘키친’(이병훈 연출)은 스케일과 스타일 속에서 길을 잃었다.

원작은 ‘연극은 사회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정치적 함의가 풍부한 사회극을 무대에 올렸던 영국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의 희곡. 웨스커 씨는 1950년대 후반 영국 노동자 계급 사회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풀어낼 공간으로 자신이 요리사로도 일해 잘 아는 장소, ‘주방’을 선택했다.

무대는 영국의 대형 레스토랑 ‘티볼리’의 주방. 영국, 독일, 아일랜드, 키프로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요리사들이 모여 있다. 지난해 TV 드라마 ‘이웃집 웬수’에 나왔던 이탈리아 식당 주방 같은 낭만적 공간이 아니다. 조리기구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히지만 피할 데도 없는 폐쇄된 공간. 30명에 가까운 배우들이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며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는 점심시간의 주방 풍경은 이 연극의 백미. 사실적인 한편 배우들의 수많은 동선과 동작들이 모두 의도되고 연출됐다는 점에서 연극적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공이 들었을 이 장면으로 관객에게 볼거리를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극 전체에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우선 극 중 캐릭터들이 공감을 살 만큼 잘 구축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젊은 독일인 요리사인 주인공 피터(이갑선)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싸움을 벌이는 말썽꾼이다. 그런데 점심 휴식 시간엔 다른 이들에게 ‘꿈을 얘기해 보라’고 다그치고, 구걸하는 거지에겐 덥석 고기 요리를 내주며, 자신이 사귀는 유부녀 웨이트리스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분노를 폭발시켜 주방을 초토화시키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박살이 난 주방에서 “왜 내가 일거리와 돈을 주는데 불만이냐”고 사장이 절규하며 극이 막을 내릴 때 ‘이 연극은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 거지’라고 따라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6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2만∼3만 원. 02-3279-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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