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연기에 소리까지 가사내용도 귀에 쏙 소리꾼 이자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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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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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억척가’
연기 ★★★★☆ 소리 ★★★★☆ 사설(대본) ★★★★ 연출 ★★★★

이자람은 소리꾼이지만 표정과 동작만으로도 무대를 휘어잡는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다. 1인15역을 소화한 ‘억척가’에서그의 팔색조 연기는 빛을 발한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집행위원회 제공
이자람은 소리꾼이지만 표정과 동작만으로도 무대를 휘어잡는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다. 1인15역을 소화한 ‘억척가’에서그의 팔색조 연기는 빛을 발한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집행위원회 제공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의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대중성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어떻게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 판소리계의 여전한 화두인 이 질문에 대해 젊은 소리꾼 이자람 씨(32)의 최근 작업들이 의미 있는 답을 보여주고 있다. 소리꾼, 가수, 배우, 작곡가, 연주가 등으로 활동하는 ‘만능 예능인’ 이자람 씨가 직접 쓰고 부르는 ‘현대판 판소리’는 대중의 공감을 얻고 극적인 재미를 주는 데 성공해 왔다.

2009년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호평을 받은 ‘사천가’에 이어 이번에도 이 씨가 직접 사설을 쓰고 작창하고 극 중 모든 등장인물을 소화한 ‘억척가(남인우 연출)’는 20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무대에서 대중 콘서트 못지않은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관객들은 막이 내린 뒤 다섯 차례의 커튼콜에 이어 마지막엔 기립 박수까지 보냈다.

러닝타임은 중간 휴식 15분을 포함해 2시간 20분. 하지만 몰입도가 높아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나’ 신기할 정도였다.

‘억척가’는 2년 전 ‘사천가’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사회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이 원작이다. 17세기 유럽의 30년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한 원작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중국 삼국시대 세 명의 자식을 데리고 전쟁상인으로 생존하는 한반도 출신 여인 김순종의 이야기로 번안했다. 순박한 김순종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억척네로 변해가는 모습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고수(鼓手)와 소리꾼 단 두 명으로 이뤄진 기존 판소리 무대와 달리 장혁조 김홍식 이향하 3명의 연주자가 북, 장구, 꽹과리 등 전통 악기에 아프리카 타악기, 기타, 베이스 기타까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공연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병풍 하나를 뒤에 세워 놓는 기존 판소리의 담백한 무대 대신 2단으로 이뤄진 입체적 무대와 뒤에 친 장막도 무대의 일부로 사용해 부피를 키웠다.

그러나 재미의 가장 큰 원천은 역시 잘 만든 대사와 빼어난 연기, 깊은 감정까지 이끌어 내는 판소리 창법에서 나왔다. 이 씨는 죽음을 앞두고 공포에 휩싸인 아들,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억척네, 거드름을 피우는 장군, 교태가 넘치는 뺑어멈 등 다양한 캐릭터로 순간순간 모습을 달리해 감탄을 자아냈다. 판소리 특유의 리듬감 덕분에 가사의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올 뿐 아니라 배 속 깊은 데서 끌어내는 듯 깊은 소리는 특히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더없이 적합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올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5월 10∼27일)에서 20∼22일 처음 선보였고 다음 달 14∼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다시 공연한다. 4만 원.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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