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 돌아갈래… 바빴던 직장생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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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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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여행… 독서… “그토록 꿈꾸던 은퇴후 삶도 지겹다”
◇극락컴퍼니/하리 고이치 지음·윤성원 옮김/264쪽·1만1800원·북로드

만원 지하철, 늘어만 가는 업무량, 상사의 호된 잔소리….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지만 대출금에, 커가는 아이들 걱정에 언감생심이다. 직장인은 꿈을 꾼다. 언젠가 회사를 퇴직하고 연금 받아 유유자적하는 노후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만 과연 그때는 행복할까.

나른한 오후 공공도서관. 우연히 만난 은퇴자들인 스고우치와 기리미네는 신문을 뒤적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여행과 골프도 지겹고, 독서와 산책도 신물이 난다. 이들은 깨닫는다. 그토록 다니기 싫어했던 회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들은 가상의 회사를 차려 ‘주식회사 놀이’를 시작한다. 장롱 속에 간직했던 양복을 꺼내 입고 스고우치의 집에 모인다. ‘주식회사 모조’라는 회사명도 정하고, 회사 이념도 정한다. 오랜만에 하는 회의에 절로 신이 난다. 이들은 ‘사업’을 키우기로 한다. 근처 허름한 찻집을 본사로 정해 신입사원을 받기로 한 것. 동네 몇 군데에 포스터만 붙였지만 은퇴자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주식회사 놀이’는 제법 설득력 있다. 은퇴자들은 각자 사장, 간부, 평직원으로 나눠 일한다. 재무제표를 만들고 매출 계획을 짠다. 진짜 돈과 물건이 오가진 않지만 어차피 서류상으로 움직이는 것은 똑같다. 회의, 야식, 퇴근길 가벼운 술자리까지. 추억이 현실이 되자 은퇴자들의 얼굴에선 생기가 넘친다. 제목처럼 ‘극락(極樂)컴퍼니’다.

엉뚱한 설정이지만 현실감이 넘치는 데서 작품의 매력이 나온다. 은퇴자들의 ‘놀이터’였던 가상 회사가 실제 돈이 오가는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변모하면서 몰락해가는 과정은 웬만한 기업소설 뺨친다.

1960, 7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가정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했던 아버지 세대와 이들 세대를 현재 부양하는 아들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가 담겨 가족 소설의 느낌도 든다. 저성장과 고령화에 발목 잡힌 일본 사회의 단면을 유쾌하고 날카롭게 들춰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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