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종이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 감성도 함께 메말라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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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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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12번째 시집 ‘종이’ 펴낸 신달자 시인

“종이가 점차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인간이 가져야 할 서정성, 부드러움, 순수… 이런 것들도 종이에 싸서 함께 버려지는 것 같았지요. 늦기 전에 종이를 주제로 한 시집을 꼭 내고 싶었습니다.”

신달자 시인(68)이 열두 번째 시집 ‘종이’(민음사)를 냈다. 시집에 담긴 일흔여섯 편의 시를 꿰뚫는 소재는 종이. 시집 전체가 ‘종이 예찬’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 컴퓨터와 휴대전화, 전자책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종이에 대한 향수와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한편 종이의 이미지를 다른 사물에 투사시키며 상상력의 영역을 넓힌다. 출간을 앞두고 “연애할 때처럼 가슴 떨린다”는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만났다.

“종이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전자기계로 대체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요. 종이를 만지고 때가 타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과 같지요. 하지만 기계는 달라요. 사람들을 점차 혼자만의 공간으로 내몰고, 삶의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죠.”

시 ‘부적’에 그런 시인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얘야/인터넷에 들어가려면/부적처럼 종이 한 장/들고 가거라/…/접속에서 접속으로/뜨거워지는/어지러운 피로에 떨어지면/흰 종이 한 장 꺼내/네 정신으로/네 이름자를 힘차게 눌러써 보아라.’

7년 전부터 종이와 관련된 시집을 내기로 하고 하나둘 시를 써 모았다. 100여 편 중에서 추려 모은 이번 시집에서 그는 종이의 의미를 파도, 뻘, 첫사랑, 대우주 등으로 확장한다.

‘누가 저렇게 푸른 종이를 마구잡이로 구겨 놓았는가/구겨져도 가락이 있구나/나날이 구겨지기만 했던/생의 한 페이지를/거칠게 구겨 쓰레기통에 확 던지는/그 팔의 가락으로/푸르게 심줄이 떨리는/그 힘 한줄기로/다시/일어서고야 마는/궁극의 힘.’(‘파도’ 전문)

“종이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고 싶었지요.” 4년 만에
열두 번째 시집 ‘종이’를 낸 신달자 시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종이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고 싶었지요.” 4년 만에 열두 번째 시집 ‘종이’를 낸 신달자 시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찍은 임권택 감독님이 예전에 전화를 해 종이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어요. 저는 ‘인간의 가장 좋은 정신’이라고 답변했지요. 시사회 가서 보니까 그 말이 대사로 나오더라고요, 호호. 임 감독님은 영화로, 저는 시집으로 종이의 귀중함을 전하고 있는 셈이죠.”

1972년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한 신 씨는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1993년), 에세이 ‘백치애인’(2002년) 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시로 등단했지만 소설과 에세이에서 더 명성을 얻은 것. 당시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에 동료 문인들의 따가운 눈총도 받았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소설과 에세이를 내면서 (내) 시가 좀 약해졌어요. 시는 굉장히 ‘냉정한 애인’이에요. 딴 데서 놀다 오면 잘 안 받아주죠. 몰두하면 좀 나아지기도 하고요.”

등단한 지 40년에 가까운 그는 시는 도저히 정상에 오를 수가 없는 대상이고, 그렇기에 가장 완벽하게 매력적인 장르라고 했다.

“좋은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죠. 이제는 제가 정말 바라는 시, 제 시의 본령을 찾는 게 소망입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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