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작가 11명이 떠났다, 삶을 끌어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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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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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 홀리다
김연수 등 지음 288쪽·1만5000원·마음의숲

시인 함성호 씨는 티베트와 네팔, 인도의 국경을 넘으면서 우연히 거듭 만나게 된 일본인 스즈키 씨와의 인연을 통해 소통의 의미를 일깨운다. 함 씨가 찍은 네팔 사카의 풍경. 사진 제공 마음의숲
시인 함성호 씨는 티베트와 네팔, 인도의 국경을 넘으면서 우연히 거듭 만나게 된 일본인 스즈키 씨와의 인연을 통해 소통의 의미를 일깨운다. 함 씨가 찍은 네팔 사카의 풍경. 사진 제공 마음의숲

“여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말 그대로 ‘사는 것’이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여행을 떠날 때만이 다른 삶을, 가슴을 활짝 펴고 숨을 쉬며 순간순간의 모든 것을 즐기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19세기 프랑스 작가의 말은 온당하다.

작가 11명이 다른 삶을 살고 왔다. 유럽, 네팔, 캄보디아 등 이국뿐 아니라 제주도와 통영 등 국내의 아름다운 여행지 곳곳을 다녀온 기록을 남겼다. 어떤 사람에게는 농담처럼 시작된 여행이었고(소설가 김중혁), 또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의 직장 일로 오게 되기 전까지 자신의 인생에 없었던 곳이었다(소설가 신이현). 그 ‘낯섦’과 ‘떠돎’의 현장에서 작가들은 새로운 감수성에 눈떴다. 수려한 문장으로 묘사된 여행지의 풍경과 작가들의 사색은, 그곳에 가보지 않았을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소설가 김연수 씨의 포르투갈 리스본 기행은 끔찍했다. 예약한 호텔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 한밤중에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골고다의 언덕과 비교해보곤 “그래도 십자가보다는 여행 가방이 가벼울 것”이라고 자위하는 부분에선, 작가의 위트에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된다. 2인실의 룸메이트는 하필이면 동양인, 히로타 상이다. 절약 정신으로 무장한 일본인과 함께 리스본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꽤나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지만, ‘괴상한 여행길’을 호소하는 작가의 육성 너머엔 유쾌함이 묻어 있다.

장편 ‘좀비들’을 집필하던 김중혁 씨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공원묘지를 찾아다닌다. 그는 거기에서 죽음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어떤 사람은 묘지의 돌에다 친구의 이름을 새겨서 놓아두고, 또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을 갖다 둔다. “죽음이란… 어쩌면 삶의 일부, 삶의 연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여행을 떠난 친구를 떠올리듯 오래전 만나서 헤어진 첫사랑을 그리듯 죽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시인 함성호 씨는 네팔과 티베트, 인도의 국경을 넘으면서 일본인 여행 동지와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거듭한다. “스즈키와 나의 국경은 그렇게 사라졌다.… 정주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헤어졌고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는 혼자였다.” 여행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어떻게 달리 보게 하는지를 시인 여행자는 일깨워준다. 아프리카 사막의 모래에 코를 박고 있는 짐승들을 보면서 ‘모름지기 삶이란 그 자리에서 견뎌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소설가 정미경 씨, 티 없이 맑게 웃는 라오스 사람들에게서 잊었던 유년의 추억과 선의, 무구함을 찾아낸 소설가 성석제 씨,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남으로써 제주도의 아름다운 이면을 발견한 소설가 박성원 씨…. 작가들의 기록은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본다. 세상과 마주서는 법을 배우는 자신을, 일말의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자신을, 그렇게 세상과 마주쳐서 부릅뜬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자기만의 가슴으로 담아내려는 자신을.”(체 게바라)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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