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성적 인간이고 싶은가 ‘숨겨진 뇌’의 술책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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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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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브레인/샹커 베단텀 지음·임종기 옮김/460쪽·1만4800원·초록물고기

2001년 9월 11일, 항공기 테러로 미국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투자은행 ‘키프, 브뤼엣&우즈’의 직원들은 남쪽 빌딩 88층과 89층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 회사 직원들은 긴급 상황에 자리에 앉아 대기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오전 8시 46분 북쪽 빌딩 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89층 직원들은 상황이 궁금했지만 교육받은 대로 자리에 앉아 대기했다. 반면 88층 직원들은 누군가가 대피하라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발 빠르게 빌딩을 빠져나왔다. 16분 뒤 남쪽 빌딩에도 비행기가 충돌하면서 빌딩이 무너졌다. 회사 직원 67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88층에 근무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옆 건물에 비행기가 충돌했는데도 89층 직원들은 왜 대피하지 않았을까.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과학담당 기자인 저자는 이유를 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집단의 결정은 개인에게 하나의 신호를 보낸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개인적인 성향과 동기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재난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도움과 안내를 받기 위해 집단으로 주의를 돌리는 경향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살아남거나 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의식이 지배하는 인간 행동의 흥미로운 사례들을 소개한다. 결혼생활, 주식투자, 대통령선거 등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인간 행동을 무의식적 편향이라는 맥락에서 사고하면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은 의식적인 뇌와 무의식적인 뇌(숨겨진 뇌)를 가졌다고 말한다. 의식적인 뇌는 합리적이고 분석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서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일단 문제를 푸는 법칙을 이해하고 나서는 다시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들을 해결하는 ‘지름길’은 무의식적인 뇌에 저장된다.

의식적인 뇌는 느리고 신중하지만 무의식적인 뇌는 빠르게 활동하고, 접근하고, 적응하도록 설계됐다. 무의식적인 뇌는 의식적인 뇌가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무의식적인 뇌는 속도는 빠르지만 정교함이 떨어진다. 그래서 자주 실수를 저지른다. 문장을 읽을 때 그 뜻은 이해했지만 철자가 틀린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의식적인 뇌가 일을 빠르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오류들은 인간의 사법제도, 정치제도 등에도 스며들었다. 2006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흑인들이 저지른 사형이 선고될 만한 600여 건의 범죄사례를 통해 피고의 외모가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덜 검은 피부의 흑인이 사형선고를 받은 비율은 24.4%였던 반면 더 검은 피부의 흑인이 사형선고를 받은 비율은 57.5%였다. 배심원들의 무의식 속에 두꺼운 입술, 넓은 코 등 전형적인 흑인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뇌는 전측두엽성 치매, 정신분열증, 자폐증, 우울증 등으로 손상을 입기도 한다. 헤로인이나 니코틴 중독 등도 무의식적 뇌의 기능을 방해한다. 중독으로 뇌 안의 경로가 장악되면 숨겨진 뇌는 자신의 의지와 어긋나게 행동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도록 의식적 마음을 조종한다. 그 예로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읽지 못한다. 얼굴 표정을 읽는 일은 대체로 무의식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 “이 책은 합리적 마음이 숨겨진 뇌의 교묘한 책략을 감당하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성의 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저자는 “이성은 무의식적 편향이라는 조류에 맞서는 우리의 유일한 암벽이며 등대며 구명조끼”라고 말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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