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 흑인음악의 한국적 변용의 치열한 성과들-박정현, 화요비, 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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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9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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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음색, 세 가지 맛의 삼품냉채-박정현, 화요비, 정인
● 흑인음악의 한국적 변용의 치열한 성과들

알앤비, 소울, 힙합, 어번 등등의 용어를 많이 들어 보셨으리라.

이들을 통칭해 흑인음악이라고 한다. 흑인음악이 주류인 시대는 재즈나 블루스, 록앤롤의 탄생부터 시작된 오래된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또 다른 의미에서 흑인음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힙합이 미국 빌보드 차트를 휩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흑인음악을 구사하는 가수들이 늘어가고, 아울러 음악 자체도 흑인음악인 경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 주류가 된 흑인음악

미국의 1990년대 주류였고 지금도 영향력이 큰 어번(urban) 뮤직이-브라운아이드소울의 음악을 떠올리면 좀더 와닿을 듯- 2000년대 우리 가요의 편곡과 사운드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또 다른 쪽에서는 힙합 가수들도 많이 늘어나면서 에픽하이나 리쌍처럼 이젠 주류로도 올라서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발라드로 통칭되는 러브송들도 장르적으로는 상이한 구조가 있을 수 있다. 락풍, 컨츄리풍, 중국풍, 트로트풍, 포크풍 등이 있을 수 있고 알앤비나 소울풍의 흑인음악 노래들이 있을 수 있다. 흑인음악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들이 부쩍 많이 늘어났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비해서 흑인음악 스타일의 발라드 곡들은 아주 가끔씩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범위를 좀 좁게 보고 있는데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한국 시장의 주류 정서로는 이런 음악은 아직 통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지 않을까. 편곡 스타일로만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살펴볼 흑인음악 창법 여자 가수 3인방은 박정현, 화요비, 정인이다. 이들은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고 각기 뚜렷하게 구별되는 음색을 가졌다.

가수 박정현은 흑인음악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1990년 후반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평가할만하다.
가수 박정현은 흑인음악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1990년 후반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평가할만하다.

■ 톡톡 튀는 샴페인 같은 박정현

먼저 박정현은 재미동포 출신으로 미국에서 태어나서 성년이 되었으며 미국에서 가스펠 가수로 활동한 후 한국에 온 경우이다. 이미 신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데뷔를 했으니 반응도 빨리 왔다.

1998년 1집부터 히트곡들을 쏟아내며 연속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최근 몇 장의 앨범은 예전에 비해 다소 덜 히트했지만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며 지명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필자 같은 게으름뱅이로서는 상상도 못할 존경의 대상이다.)

박정현은 흑인음악이 우리나라에 확실히 접점을 맺은 1990년대에 솔리드의 김조한 등과 함께 여실하게 흑인 창법을 보여준 대표적인 가수이다. (비슷한 시기에 애즈원, J 등 해외파들이 많이 들어 왔고 바비킴이라는 걸출한 가수도 '닥터 레게'란 팀의 일원으로 데뷔했으나 이후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창법도 창법이지만 안면근육 수십 개와 손, 몸짓이 함께 어우러진 대규모 합창단과도 같은 제스처는 어릴 때부터 흑인음악을 몸으로 경험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경지였다.

음색으로 보면 베이비 보이스라고 할 수 있는 어리고 가늘고 높은 미성이다. 평소 목소리도 여리고 높은 편이어서 동안이자 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굵은 목소리나 중간 목소리의 가수들이 주류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어린 목소리는 가수들 중 흔하지 않고 또 흑인음악계에서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Lovin' You'로 유명한 미니 리퍼튼(Minnie Riperton) 같은 가수 그리고 한국에서는 비쥬의 '다비'같은 가수와 유사한 음색이고 목소리 자체의 느낌이 매우 귀엽고 술로 비유하자면 샴페인처럼 탄산의 상쾌함이 있는 목소리라고 할까.

미니 리퍼튼과 마찬가지로 고음대에 강점이 있고 음역대의 시작이 다른 가수보다 높다. 온갖 기교가 가능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 기교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부르는 점도 놀랍고 대부분의 경우 곡 해석력과 감정표현이 탁월하다.

기교와 감정 표현이 함께 지나치게 뛰어나면 아무래도 다른 가수가 더 잘 부를 여지가 없으니 박정현의 히트곡들은 별로 리메이크될 일이 없을 것이다. 1집에서의 어색한 한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교정해서 가사 전달력도 좋아졌다.

언제나 톡톡튀는 샴페인 같은 가수 박정현(스포츠동아 임진환)
언제나 톡톡튀는 샴페인 같은 가수 박정현(스포츠동아 임진환)

■ 1집에서의 어색한 한국어도 완벽하게 교정

최근에는 기교를 가급적 쓰지 않고 담백하게 부르는 방식으로 창법을 바꾸고 있는데 이것은 본인이 흑인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자기 스타일이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지는 것이 싫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꼽은 대표곡으로는 'You Mean Everything to me'와 '눈물이 주룩주룩', '꿈에' 이 세 곡. 'You Mean Everything to me'는 박정현의 음색과 궁합이 가장 좋은 내용이어서 노래의 분위기에 쉽게 동화될 수 있다.

'눈물이 주룩주룩'은 앞의 노래와 정반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별에 메마른 가슴을 폐부 깊숙하게 끌어 당겨 절제시킨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단정하고 담백하게 변화된 본인의 창법을 잘 보여 준다.

'꿈에'는 박정현의 드라마틱한 표현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대곡으로 포트폴리오에 꼭 들어갈 법하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화요비. 그녀의 음악은  끈끈하고 달콤한 일본청주를 닮아있다.(스포츠동아 임진환)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화요비. 그녀의 음악은 끈끈하고 달콤한 일본청주를 닮아있다.(스포츠동아 임진환)

■ 일본청주 느낌 화요비

화요비는 '우리 결혼했어요'의 예능스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예전에도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4차원의 엉뚱한 멘트들로 톡톡히 감초역할을 했다.

물론 가수로서도 같은 연배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데뷔 때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데뷔곡이자 본인의 최대 히트곡인 'Lie'로 시작해 같은 앨범의 '그런 일은', 2집의 '눈물', 3집의 '어떤가요', 4집의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 보아요' 등 히트곡 행진 이후 '맴맴 돌아', '남자는 모른다', '반쪽', '마취' 등 최근까지 좋은 노래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요즘 화요비의 노래는 예전의 노래와 다르게 들리는데 창법이 바뀐게 아니라 2007년 8월 받은 성대 수술의 영향인 듯하다. 또 화요비가 데뷔한지도 10년이 되었기 때문에 초기 목소리, 중기 목소리, 최근 목소리가 다 다르다. 평소 목소리가 보통 여성에 비해 무척 저음인 화요비는 흑인음악을 구사하기에 가장 뛰어난 음성을 타고 났다.

저음의 목소리에 타고난 비성과 약간의 허스키로 인해 자연스럽게 울림이 좋다. 저음대에서의 뛰어난 전달력과 고음역에서의 잘 다듬어진 절제된 폭발력으로 매우 흡입력이 높은 보컬리스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애상적이고 절제된 노래 'My all'에서 차용한 듯한 1집 앨범 제목에서 보듯이 데뷔 초기엔 당대 최고의 여가수인 머라이어 캐리 따라하기를 의도적으로 시도했다.

사실 'My all'이란 노래가 애상적인 분위기의 슬로우 템포 곡이기 때문에 화요비(다들 아시겠지만 당시에는 '박화요비'였다)의 'Lie'란 노래가 추구하는 분위기와 일치했고 이후 다음 가는 히트곡인 '어떤가요'의 경우도 거의 비슷한 분위기의 곡이어서 'Lie', '어떤가요'로 어느 정도는 화요비 스타일이 굳어졌었던 것도 사실이다.

■ 화요비와 머라이어 캐리

개인적으로는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가 훨씬 맑고 고음도 평탄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목소리가 많이 비슷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머라이어 캐리 보다는 'Save the best for last'로 유명한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Williams)와 음색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술로 비유하자면 끈끈하고 달콤한 일본청주와 비슷하지 않을까?

복합적인 질감이 있지만 적당한 쇳소리가 있어서 텁텁하지 않고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음역을 조금씩 낮추는 건 목소리에 맞게 바꾸는 것이어서 괜찮지만 라이브를 들어 보면 호흡이 약간 짧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가 흑인음악 최고 보컬리스트로 우뚝 서길 기원해 본다. 개인적으로 꼽아본 대표곡은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 보아요', 'Lie', '어떤가요' 이 세 곡이다.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 보아요'는 음역대와 템포, 곡의 형식 등이 화요비에게 안성맞춤이어서 화요비의 표현력과 장악력이 가장 극대화된 노래가 아닌가 한다.

'Lie'는 10대 소녀의 데뷔곡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수들을 기죽이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고음역으로 급히 끌어 올리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다. '어떤가요'는 이 한 곡으로 화요비를 확실히 각인시킨 대표 노래로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화려한 기교와 컨템퍼러리 R&B 스타일의 편곡이 돋보이는 명곡이다.

히트곡 ‘사랑은’을 열창하고 있는 가수 정인. 그에 이르러 R&B는 토속화 되고 있다.(스포츠동아 양회성
히트곡 ‘사랑은’을 열창하고 있는 가수 정인. 그에 이르러 R&B는 토속화 되고 있다.(스포츠동아 양회성

■ 집에서 담근 동동주 같은 정인

가수 정인은 1980년생으로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장애가 있지만 노력과 실력으로 현재에 이른 가수이다.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리쌍의 스페셜 앨범에 수록된 '사랑은'. 앞의 두 가수가 공연계와 음반계에서 정상권에 있는 가수들이라면 정인은 아직 그 정도의 지명도에 이르지 못했지만 독특한 보이스 컬러로 음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공식적인 첫 작품은 2002년에 나온 리쌍의 1집 타이틀곡 '러쉬'에 보컬 피처링을 한 것. 이후 리쌍의 실질적인 제3의 멤버로 활약을 함과 동시에 (리쌍이 라이브를 하는 경우 정인은 당연히 함께 다닌다) 쥐플라라는 5인조 소울 밴드에서 활동해 오다가 최근 첫 독집인 미니 앨범을 냈다. 가수 박혜경, 이정현처럼 보다 독창적인 패션 스타일을 구사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 정도의 수수한 외모를 가진 정인이 노래 실력 하나만으로 도전장을 냈으니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든든한 후원자이자 제작자인 길의 후원을 받고 있으니 달라진 길의 위상 덕분에 예전보다는 훨씬 좋은 여건이 아닌가 싶다.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고 아주 약간 허스키하다. 노래하는 음색은 매우 독특해서 살짝 발효시킨 김치나 홍어의 느낌이 난다. 각 소절의 시작부분을 항상 목구멍에서 살짝 막았다가 열면서 앞쪽에 강조를 둔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을 사용한다.

그것은 아마 많이 노력하고 다듬어서 생긴 독창적인 보이스 컬러가 아닐까 싶다.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에타 제임스 같은 대가들의 창법에서 강조하는 부분을 잘 캐치해서 하나의 창법으로 승화시킨 게 아닐까 싶은데 비슷한 음색이나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로는 메이시 그레이(Macy Gray)를 꼽고 싶다.

■ 같은 목표, 그러나 다른 해석을 즐기자

술로는 시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공장제 막걸리보다는 산 입구 음식점에서 파는 직접 담근 동동주에 비유하고 싶다. 웰빙 건강식으로 막걸리, 동동주가 갑작스럽게 다시 주목받듯이 정인도 실력으로 가요계에 우뚝 서 주었으면 한다.

대표곡으로는 신곡인 '미워요'와 '사랑은' 그리고 쥐플라 시절에 발표한 '러브 스토리' (셜리 베이시의 재즈 히트곡인 'where do I Begin'을 참고했을 듯하다)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세 곡 중에는 '미워요'가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레파토리들을 계속 만들어 나가길 응원해 본다.

김세원 / K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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