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기업활동 옥죈 뉴딜, 공황 장기화 시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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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美 비참한 일상 해부
성공한 경제정책의 실상 고발

묵묵히 일한 국민 ‘봉’으로 생각
정치인 ‘장밋빛 약속’ 경계해야

◇ 잊혀진 사람/애미티 슐래스 지음·위선주 옮김/ 648쪽·2만7000원·리더스북

책은 1937년 11월의 어느 저녁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윌리엄 트로일러라는 13세 소년이 침실 문틀에 목을 매 자살했다. 가난이 원인이었다. 여섯 아이를 둔 그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됐다. 18세인 누나는 웨이트리스 일자리를 찾았지만 구하지 못했다. 그의 형은 “동생이 예민했고 식사 시간에 자기 식사를 챙겨 받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는 음식을 달라고 하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33년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37년 발생한 트로일러의 자살은 뉴딜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 논설위원을 지냈고, 블룸버그의 컬럼니스트인 저자의 시각은 이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대공황을 종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공황을 장기화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시 미국 경제를 좌우했던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켜 마치 소설을 쓰듯 당시의 상황을 풀어썼다.

1933년 대통령에 오른 루스벨트는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 회복을 적극 추진했다.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논리를 토대로 공공사업을 확대했다. 새 선거구에 돈을 공급하면 소비가 증가해서 경제가 튼튼해질 것으로 여겼다. 전국부흥청(NRA·National Recovery Administration)을 설치해 사업 규약, 최저임금, 최대 근로시간 등을 결정했다. 재단사들이 바느질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까지 결정할 만큼 루스벨트는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뉴딜 추진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연금을 보조해주면 가족들이 더 행복해하고 생산성이 더 향상될 것으로 여겼고, 대기업과 부유한 가문을 파멸시키면 중소기업들과 살아남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번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기업에 대한 과세는 정부 예산 수지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이런 정부의 조치에도 1938년 1월 실업률은 17.4%였고 다우존스지수는 대공황 이전에 못 미치는 121에 머물러 있었다. 부작용도 발생했다. 미국은 루스벨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갈라졌다. 대통령은 점점 더 법조계 실용주의자들과 예스맨들을 가까이 했다. 반대로 대기업 고용주 부유층은 새로이 적개심을 갖게 됐다.

저자는 “1930년대 중반에 경제는 회복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연방정부의 가혹한 정책 때문에 회복될 수 없었다”면서 “최악의 원인은 루스벨트가 기업 활동에 대해 전쟁을 벌인 일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뉴딜정책으로 임금이 인상되자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추가로 고용하기 어려워졌다. 1930년대 후반의 고질적인 일자리 부족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 와중에 (뉴딜정책으로부터) ‘잊혀진 사람’이 생겨났다.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을 받을 만큼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이 책은 뉴딜 정책의 와중에 고려 받지 못한 ‘잊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1936년 인디애나 주의 한 논설위원이 한 말을 소개했다.

“잊혀진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공공 구호금을 받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며 대공황이 닥친 이래로 계속 이렇게 살려고 노력해온 사람이다.”

해제를 쓴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국민’은 묵묵히 일하고 세금을 내는 ‘잊혀진 사람’이라는 점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면서 “이 책은 국민이 낸 세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늘어놓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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