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세상과 불화하는 두 지성, 글로 通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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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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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작가 레비-우엘벡, 2008년 6개월간 ‘편지 토론’
세계관-글쓰기-사회참여 등 다르지만 솔직한 속내 털어놔

《“친애하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 최근 ‘타임’지는 프랑스 문화와 지성의 쇠퇴를 상징하는 인물로 우리 두 사람을 선정했습니다. 조금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만, 정확한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토론을 벌일 조건은 모두 구비된 셈입니다.” “브라보. 우엘벡 당신은 정곡을 찔렀습니다. 나는 30년 동안이나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겨줄 훌륭한 독자를 기다렸지만 이젠 지쳤습니다. 이제 당신 덕분에 소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신의 패를 깐다면 나의 패를 까겠습니다.” 편지글 형태인 책의 시작이 예사롭지 않다.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런 말을 서슴없이 던지며 한판 토론을 예고할까. 두 사람의 면면을 우선 살펴보자.》

◇ 공공의 적들/베르나르 앙리 레비, 미셸 우엘벡 지음·변광배 옮김/392쪽·1만8000원·프로네시스

프랑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에서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에게서 배운 레비는 철학자, 소설가, 기자, 영화감독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졌다. 분쟁지역을 다니며 힘없는 자의 편에 서지만 출신 성분 때문에 진정성에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일부에선 그를 ‘캐비아 좌파’로 부른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처럼 솔직하고 공격적인 그의 저술과 발언, 행동은 늘 논란을 일으킨다.

소설 ‘소립자’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미셸 우엘벡은 우파적이며 시니컬한 성향으로 인해 내는 책마다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그는 스스로를 “허무주의자에다 반동적인 인물이며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우파 아나키스트’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책은 이런 문제적 작가들이 6개월 동안 편지로 벌인 담론을 담았다. 두 작가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비난에 관한 얘기부터 꺼냈다. 우엘벡은 2008년 2월 2일자 편지에서 “모욕, 조롱에서 오는 기쁨을 집요하게 추구했지만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려는 욕망’ 아래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는 욕망’이 감춰져 있다”고 털어놨다.

레비는 4일자 답장에서 “인터넷의 악플이 나름 중요성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적들의 글을 읽고,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결론을 끌어낸 후에는 곧바로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우엘벡은 그런 레비를 향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글쓰기 태도’를 꼬집는다. 우엘벡은 “당신의 운명 속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아마 당신을 ‘고백문학’ 속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비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그는 “나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거의 공포에 가까운 혐오를 느끼는 편”이라고 답장했다. “사람들이 글쓰기라는 모험에 뛰어드는 것은 현재의 모습보다는 앞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알기 위해서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나는 한 권의 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과 자기와 조우하는 것, 그리고 다른 여러 바보스러운 모습 등을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세상과 자주 불화(不和)하는 공통점을 지닌 두 작가는 편지라는 형식에 기대 성장 배경, 세계관, 문학관, 사회참여에 대한 생각 등 속내를 털어놓는다. 니체, 보들레르, 랭보, 쇼펜하우어, 사르트르 등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을 인용하고 다양한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는 두 사람의 글은 읽기에 쉽지 않지만 지적 탐험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종이나 종교, 환경 같은 좀 더 심오한 주제에 대한 의견 교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참여정신’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레비는 자신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전쟁 이후 계속해서 불의에 맞서 싸우고 글을 쓰기 위해 지구 끝까지 가곤 했던 습관 속에 배어 있는 취향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우엘벡의 시선은 다소 시니컬하다. “내가 사회 참여자가 아닌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무신론에 가까운 이데올로기적 절제 때문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글쓰기’로 이어진다. 레비는 5월 27일자 편지에서 “문제는 왜 글을 쓰느냐”라면서 ‘열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생에 있어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은 딱 두 개였습니다. 하나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의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글쓰기입니다. 나에게는 문학을 대체할 만한 제3의 정열이 없습니다.”

우엘벡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내가 소설을 쓰는 재능을 타고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문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과 관련지어 말하자면 나는 단 한 가지 재주는 타고난 것 같습니다. 바로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 재주입니다…그렇습니다. 말하자면 글을 쓰는 운명에 이미 사로잡힌 것입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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