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억서 100년의 미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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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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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90주년 연중기획 한일 강제병합 100년

경복궁 ‘일장기 점령’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를 걸어 놓고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것을 상징적으로 과시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복궁 ‘일장기 점령’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를 걸어 놓고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것을 상징적으로 과시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00년 전,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1910년 8월 22일, 그리고 일주일 뒤 순종 황제의 이름으로 이 조약이 포고된 8월 29일.

경술년의 국치(國恥)였다. 태양조차 다시 떠오를 것 같지 않던 충격이었건만 시간은 쉼 없이 흘러 조약이 포고된 지 어느덧 3만6295일을 맞았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미래의 희망을 가다듬기 위해 그 지난(至難)했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성찰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와 과거를 되돌아보고 정립하지 않으면 미래와 꿈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35년간 항일 의지를 꺾은 적이 없었다. 한반도 전역에서, 중국과 미주 유럽 곳곳에서 목숨을 바쳐 투쟁하면서 광복을 갈망했다. 광복 후에는 “세계에서 일본인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칭송을 들으며 산업화를 이뤘다. 그것은 6·25전쟁의 참화를 딛고 꽃피운 성과였다.

이제 국치에 맞서는 항일의 의지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극일(克日)의 동력이 된 데 이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광복 후 우리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렀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이 됐다.

하지만 한일 양국 간에는 신(新)동반자 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한류와 일류, 김치와 스시가 만나고 있고 동북아 경제 공동체의 움직임도 싹트고 있지만 여전히 감정의 앙금은 남아 있다. 중국의 급부상과 일본의 강대국 지위는 100년 전 한반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아일보 연중기획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새로운 100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시리즈다. 1부 ‘긴박했던 조선의 운명’(3회), 2부 ‘일제강점기의 한국과 일본’(3회), 3부 ‘광복 후의 한일 관계’(4회), 4부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4회) 등 모두 14회로 나누어 진행한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모여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 대담과 100인 설문조사도 마련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하는 국제학술대회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년과 동아시아’도 후원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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