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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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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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나’, 그 수많은 소중함… 희망…

《‘나는 누구인가.’
복제인간(클론)을 다룬 SF 영화들이 줄곧 던져온 존재론적 질문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와 똑같은 외모를 갖고 있는 데다 성격과 지능마저 나와 동일한 복제인간이 실존한다면, 과연 ‘나’라는 대상을 존엄성을 지닌 유일한 인격체로 규정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지요.
복제인간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 자신 역시 자아를 가진 소중한 존재가 아니겠어요?
영화 ‘더 문(The Moon)’은 주인공이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과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놀라운 사건을 다룹니다.
그런데 이 영화엔 남다른 데가 있어요.
복제인간과 만나면서 화들짝 놀라는 ‘나 자신’ 또한 한갓 복제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이지요.
자, 그렇다면 ‘진정한 나’라는 게 도대체 의미를 가질 수가 있을까요?》
[1] 스토리라인


미래. 자원부족에 시달리는 인류는 달 표면에서 에너지자원을 채굴해 조달하고 있습니다. 샘 벨(샘 록웰)은 에너지회사와 계약해 3년간 달기지에서 홀로 이 일을 수행해 왔지요. 하지만 통신위성 고장으로 샘은 지구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채 인공지능을 갖춘 컴퓨터 ‘거빈’을 유일한 말동무 삼아 외로움을 이겨갑니다.

아, 이제 2주 뒤면 샘은 지구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건강이 자꾸만 악화됩니다. 두통이 심해지고 환영(幻影)까지 보이기 시작해요. 혼란 속에서 작업차를 타고 채취현장으로 간 샘은 급작스러운 사고로 정신을 잃습니다.

눈을 뜬 샘은 기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과연 나는 어떻게 기지로 돌아왔단 말인가…. 의문에 싸인 채 사고현장을 찾은 샘은 깜짝 놀랍니다. 버려진 작업차 안에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인간이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사고를 당한 ‘또 다른’ 샘을 구해 기지로 당도한 샘. 결국 둘은 자신들이 모두 3년 수명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었단 사실을 알고 기겁합니다. 에너지회사는 샘의 복제인간을 여럿 만들어놓은 뒤 샘이 죽으면 또 다른 샘을 작업현장에 투입해 왔던 것이지요. 샘의 복제인간들은 모두 지구로 귀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숨져갔던 겁니다.

당혹스러운 사실에 직면한 두 명의 샘은 서로 다투고 갈등합니다. 하지만 결국 둘은 서로의 마음을 모으는 것만이 질식할 듯한 현실에서 탈출할 유일한 희망임을 알게 되지요. 의기투합한 두 샘은 놀라운 일을 도모하는데….

[2] 생각 키우기

‘나’란 존재가 있어요. 어느 날 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과 맞닥뜨리게 돼요. 자, 이때 나와 또 다른 나 중 ‘진짜 나’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복제된 나 말고 ‘지금의 나’가 진짜 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건 어떨까요? 지금의 나조차 복제인간임이 드러난다면? 그럼 지금의 나는 과연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답은 다음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겠지요. 진짜 나이거나, 아니면 진짜 내가 아니거나…. 그런데 이 영화가 진정 탁월한 이유는, 이런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궁극의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지금 나 자신이 진짜 나인지 아니면 가짜 나인지를 따지기 전에, 더 중요한 현실이 있어요. 그건 바로, 내가 누구이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예술적 감성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엄연한 인격체란 사실이에요! 그래요. 지금의 내가 진짜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나를 복제한 또 다른 나도 똑같이 소중하단 사실이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더 문’은 복제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며 암울한 메시지를 던졌던 여타 SF 영화들과 ‘쿨’하게 결별해요. 이 영화는 말해요. “내가 누구이든, 내가 몇 명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모든 나’는 예외 없이 소중하며 모든 나는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말이지요.

맞아요. 이 영화는 정체성 문제를 넘어 ‘희망’을 이야기해요. 이런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모든 나’가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치는 것만이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에요. 결국 ‘죽어가는 나’가 스스로를 희생하며 ‘복제된 나’를 지구로 탈출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정체성보다 더 고귀한 ‘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을 전하는 감동적인 순간이랄 수 있겠지요. 영화 속 샘은 자신을 희생해 또 다른 샘을 지구로 귀환시켜 에너지회사의 비인간적 행위를 고발함으로써 영원히 살게 돼요.

샘의 유일한 말동무였던 인공지능 컴퓨터 ‘거빈’이 (SF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컴퓨터들이 인간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악역’을 수행하는 데 반해) 결정적인 순간 샘을 도와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인간이든 아니든 모두 소중한 주체이며,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뜻을 모음으로써 존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지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하나 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달 기지의 이름에 주목해볼까요? 바로 ‘사랑(SARANG)’이란 이름이랍니다. 게다가 달에서 에너지원을 채취하는 거대 다국적 회사도 한미 합작회사로 설정되었어요. 왜냐고요? 이 영화를 연출한 영국인 덩컨 존스 감독은 한국이 생명복제와 로봇 강국이므로 미래엔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이런 상상을 했다고 해요. 한국의 뛰어난 기술력을 높이 평가해준 점은 반길 일이지만, 한국이 참여한 미래 다국적 회사가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포장된 달 기지를 만들어 놓고선 인간성을 짓밟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모습에는 영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네요.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취만큼 섬뜩한 게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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