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학교가 싫으면 그만둬도 좋다 대신…”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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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제공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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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필름 클럽/데이비드 길모어 지음·홍덕선 옮김/304쪽·1만2000원·솔

10대인 아들 제시는 학교 공부에 흥미를 완전히 잃은 상태다. 라틴어 공부를 봐 주던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학교가 싫으면 다니지 않아도 좋다”고 조용히 말한다. 자퇴 허락의 조건으로 내세운 건 일주일에 세 번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게 전부다.

저자와 아들, 회원이 단 둘인 필름 클럽의 논픽션은 이렇게 시작한다. 캐나다의 영화평론가인 아버지는 영화를 매개로 아들과 대화할 접점을 찾는다.

처음으로 함께 보는 영화는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1959년작 ‘400번의 구타’. 감독의 어린 시절 방황을 그린 영화를 함께 본 뒤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주인공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물으며 아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고상한 영화로 고1인 아들의 관심을 계속 붙들어 둘 수는 없는 법. 샤론 스톤이 등장하는 ‘원초적 본능’은 아들로부터 “아빠! 이 영화 정말 짱이에요”라는 감탄을 이끌어낸다.

필름 클럽에서는 주요 장면이 갖는 의미와 감독의 의도, 배우의 뒷얘기들이 아버지의 해박한 지식 덕택에 재미있게 버무려진다. 아들의 상황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기도 한다. 실연으로 우울해할 때는 신나는 마이클 만 감독의 액션영화 ‘비정의 거리’를, 가끔 마약에 손대는 아들이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아버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을 상영한다.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최고의 명장면 뽑기’ 놀이를 하고 ‘재능 발굴’ ‘죄스러운 쾌락을 주는 영화’와 같은 주제로 엮어 감상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감상이 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보고 감동에 젖은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저 한 쌍의 창부 이야기일 뿐인데 너무 멋지게 그렸다”고 일갈하고, 비틀스가 직접 출연한 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에 나오는 비틀스 음악에 대해선 “그저 좋은 목소리네요”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세대차의 확인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아들에게 스며든다. 고등학교 섹스 코미디인 ‘리치먼드 연애 소동’에 출연한 숀 펜의 명연기를 보면서 아들은 자신의 재능은 무엇일까에 관심을 갖는다.

영화 속 이야기를 소재 삼아 아들과 나눈 대화는 결국 연금술의 마법을 부린다. 114편의 영화를 보며 3년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마침내 아들로부터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재능과 꿈을 찾아 아들은 현재 캐나다 힙합 밴드 ‘커럽티드 노스탤지어’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예술의 힘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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