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부자 형과 깡패 동생

  • 입력 2009년 4월 22일 19시 55분


“거지가 거지답게 손을 내밀고 달라 해야 주지요! 이제 그렇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좌파정권은 입도 뻥긋하지 않던 말을 이명박 정부 고위인사가 했다. 작년 4월 초였다.

그로부터 1년도 더 흘렀지만 그제의 이른바 ‘개성 접촉’은 북을 거지다운 거지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한 전문가는 어제 아침 전화로 분통을 터뜨렸다. “이것들이 도대체 뭔데 오라 가라 합니까. 합당하고 국제관례에 맞는 언동이 아니면 상대하지 말아야지, 질질 끌려가기만 하니 딱하고 갑갑해요.”

수류탄 까면 다 죽는다

정말이지 우리에게 북은 도대체 뭔가. 잘사는 형한테 손 내미는 못났지만 착한 거지 동생은 아니다. 한배를 타고 났지만 수류탄에 독극물까지 몇 개 들고 설치는 깡패 동생이다. 어느 금융계 인사는 며칠 전 “이런 관계일수록 파국만은 피해야 한다. 바로잡을 건 잡아야지만 대북 정책에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운명적 관계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민족공동체의 완성까지를 시야에 넣고 상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금융인의 걱정대로 수류탄을 까고 독극물을 풀면 부자 형네는 난리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지경에 이르면 깡패도 죽은 목숨이다.

형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돈을 꽤 벌 만큼 똑똑한데 동생인들 바보일 리 없다. 자본주의 아닌 사회주의, 개방 아닌 폐쇄, 민주 아닌 세습 전제(專制)의 길로 잘못 들어가 경제에 실패하고 깡패가 됐지만 죽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살려고 그 짓을 한다.

그런데 요즘 호전적 도발 언행이 도를 넘고 있다. 북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핵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WMD)를 증강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게 밑천인 것 같다.

형네는 10년간의 친(親)깡패 정권이 담장을 튼튼히 하기는커녕 오히려 허무는 짓을 많이 했다. 노 정권은 북이 핵개발에 매진하던 와중에 전시(戰時)작전통제권을 한미 공동행사에서 한국 단독행사로 전환하는 데 몰두했고 결국 뜻을 이루었다. 그때 노 대통령이 외치던 자주국방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금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2012년 전작권이 전환된 뒤에도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공약은 확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어제 한 연설에서 말했다. 물론 그러기를 바라고 믿는다. 북의 핵무기는 우리의 재래식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을 뛰어넘는 위협이기 때문에 우리는 1차적으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핵우산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명시돼 있는 것은 아니다. 양국 당국자 간의 구두 공동성명으로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오바마 정부 간의 동맹 업그레이드 작업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도 미국에 줄 것은 줘야 한다.

안보관리 시스템 허점 보여

지난날 조지 W 부시 정부 일각에서는 노 정권을 이적(利敵)집단 정도로까지 인식했다. 만약 앞으로도 양국에 서로 불신하는 정권이 다시 등장한다면 핵우산 약속이 어떻게 변질될지 모를 일이다.

노 정권이 밀어붙인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합의는 당장에도 우리 안보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샤프 사령관은 어제 “북은 사전 경고 없이 남을 선제공격할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물론 한미군은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다지만, 전작권 전환(분리)을 위한 준비도 동시에 하고 있어 연합대응에 허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국방부와 군 내부에는 전작권 전환 작업을 통해 진급, 보직 등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들은 북의 WMD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라도 전작권 전환 보류를 추진하자는 의견에 펄쩍 뛰며 반대한다.

노 정부는 ‘개성공단에 우리 국민이 인질로 잡히면 북한 당국의 협조를 얻어 해결한다’ ‘북한이 붕괴되면 기다리며 북측과 함께 해결방안을 협의한다’ 같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대책이라고 준비했다. 그럼 MB정부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책이 있는가. 국민은 그럴 것이라는 충분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당장 세계 9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여부도 북의 흔들기에 말려 장고(長考)모드에 들어갔다. 25일째 개성공단에 억류돼 있는 A 씨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저들은 언제든지 제2, 제3의 인질을 만들 수 있는 집단이다. 그럼 정부는 북의 인질카드가 나올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있을 것인가.

PSI 참여 문제에 관한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전체의 종합적 안보관리 체제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난제들에서 체계적 대응을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의 안보 불안이 더 증폭될 우려가 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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