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신간]평범한 ‘5초남’이 부른 인생별곡 “나는 휴머니스트다”

  • 입력 2008년 12월 27일 23시 29분


스스로의 글을 ‘생활 잡글’이라고 말하는 50대의 평범한 직장인이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오롯이 풀어놓았다.

뜨거운 열정으로 앞을 가로막는 벽을 허물고자 좌충우돌하는 청년도, 모진 세상풍파를 견디고 추억만을 곱씹고 살아가는 노년도 아닌, 세상 진창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낀 세대’ 50대의 저자가 풀어놓은 삶에서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005년 실직한 가장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자신의 얘기를 ‘백수의 월요병’이란 책으로 솔직하게 엮어 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저자는 20대 아들과 이메일 대화를 나누며 사는 열혈남이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새 책 ‘나는 휴머니스트다’는 크게 4장으로 구성돼 있다. △문화, 책읽기 뮤지컬 연극 영화를 보고나서 쓴 글 △일상, 여행 우정 등 일상적인 삶에 대한 소소한 얘기 △아들에게 쓰는 편지, 부자간의 소통과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당부하는 글 모음 △우리말과 글의 산책,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 등이다.

언뜻보면 ‘푼수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솔직하게 써내려간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지금은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저자 최영록(52) 씨에게 독자들을 대신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지나치게 솔직하게 쓴 글은 나중에 읽어보면 얼굴이 좀 뜨겁지 않나요.

“글은 말과 달리 기록입니다. 말하자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거지요. 글은 한번 써놓으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글은 사람이 오롯이 담기는 겁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써야겠지요.”

-스스로를 ‘5초남’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지요.

“50대 초반 남자의 약칭입니다. 결혼한 지 대게 2~30년 되면서 직장이나 사회에서 주요 포스트를 맡고 있어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아이들은 장성해 대학에 다니거나 수험생이라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외롭고 고독하나 어디 마음 편하게 얘기할 상대도 드물고…, 한마디로 표현하면 불쌍한 낀 세대지요.”

-책 제목이 ‘나는 휴머니스트다’인데, 자신을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하나요.

“휴머니스트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이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 제목은 편집장이 제안했습니다. 평소 말이나 글에서 ‘인간적으로’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버릇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정다감’이나 ‘곰살궂다’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인간 개개인이 사는 꼴을 보면 그 모든 것이 ‘살아가는 슬픈 몸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하게 특정하거나 불특정한 누구를 생각하면 안쓰럽거나 연민의 감정부터 앞서는 버릇이 있습니다. 나중에 출가라도 할지는 저도 모를 일이지요.”

-아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다는데….

“아들이 25통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기분 좋고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운이라도 띄워본다는 게 어딥니까. 제가 보낸 이메일을 보면 부모가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고 베푼다는 것을 알겁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아들이 무슨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하던가요.

“사소한 리포트 문제부터 책읽기, 자기 정체성, 여자문제 등등 많습니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한데….

“고향은 내 탯줄이자 탯집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탯말을 들으며 나는 자랐을 겁니다. 서울생활 30년간 한번도 내 말투를 표준어나 표준말로 해야 하고 고치려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대학 때 영문과 교수가 영어를 읽는데도 전라도 사투리풍이라며 낭독을 시킨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면 고향으로 달러가 아버지와 주꾸미 꼬막을 삶아놓고 개다리소반에서 소주를 한잔 하고 싶습니다.”

-글을 보면 직장생활 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견딜만한가요.

“100년이나 200년 전에 태어났으면 ‘한량(閑良)’이었을 겁니다. 맛과 멋을 모르면 풍류남아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한잔 거나하게 걸치면 노래 한 자락이라도 아무데서나 마음 놓고 불러 제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니 직장생활은 체질에 맞지 않지만 적응도 제법 잘하는 편입니다. 스스로 성실하고 진정성은 우수한 편인데 치열하지 못해 아내에게 늘 퉁사리를 먹지요. 그래도 꼭 이겨보겠다거나 성취하겠다는 욕심이 별로 생기지 않아요. 그리고 편하게 살아와서 미래가 너무 무섭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다니는 게 아닐까요.”

-왜 스스로의 글을 ‘생활 잡글’이라고 말하나요.

“‘생활글’도 아니고 굳이 ‘생활 잡글’이라고 쓰는 것은 우리 일상 모두가 글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바로 옆에서 조잘조잘, 도란도란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글이 잘 읽힌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생활글의 전령사’가 되고 싶습니다. 내 글로 약간의 지식도 넓히고 재미도 느끼면 좋겠습니다. 슬플 때는 위로가 되고 기쁠 때는 같이 기뻐하고 그런 것이 사람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감정이 점점 너무 메말라가서 요즘엔 도무지 주변에 관심과 애정이 없습니다. 쓸쓸한 삶을 더욱더 쓸쓸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제발 바라건대 말이 아니면 글로라도 자기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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