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래가 필요했던 그들, 바다를 매수했다

  • 입력 2008년 12월 20일 02시 59분


◇어필/존 그리샴 지음·유소영 옮김/440쪽·1만2000원·문학수첩

존 그리샴 3년만의 신작

자본과 권력의 결탁 고발

드디어 평결이 나왔다.

4년간의 치열한 소송. 공판 날짜만 71일. 배심원단 합의에 이틀이 걸렸다. 대기업 ‘크레인 케미컬’과 미국 미시시피 주 보우모어의 시골 아낙 자넷 베이커 재판. 법원은 독성화학물질을 버려 지하수를 오염시킨 회사에 4100만 달러(약 53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굴지의 대기업에 맞서 재산마저 쏟아 붓고 은행 빚까지 진 변호사 페이튼 부부. 하지만 평결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크레인 케미컬의 총수 칼 트루도는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인물. 기업 변호사 측은 즉각 항소에 나선다. 그리고 변호인단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트루도는 또 다른 ‘검은 거래’에 나서는데….

스릴러 장르의 인기작가 존 그리샴이 돌아왔다. 2005년 ‘브로커’(북앳북스) 이후 3년 만의 작품. 자신의 장기인 법정을 무대로 거대 기업과 사회적 약자라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그려냈다. 올해 초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실감나는 내용으로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이 있느냐를 놓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판 법정에서 벌어진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는 정정당당하지 않았다. 소송 내내 술수를 일삼았던 건 전초전에 불과했다. 항소 준비에 들어가자 크레인 케미컬은 묘수를 찾아낸다. 마지막 결정을 내릴 대법원 판사 9명의 성향이 4 대 5로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알고 1명을 아예 바꿔버릴 계획을 세운 것.

말도 안 되는 듯한 이 전략은 실제로 미국 법률 제도에서 가능하다. 미국은 대법원 판사도 선거로 뽑기 때문이다. 트루도가 800만 달러에 고용한 선거 브로커 집단 ‘트로이 호건’은 실제적 행동에 들어간다. 중도적인 쉴라 매카시 판사를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로 근거도 미미한 의혹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그리고 젊고 의심받지 않을 만한, 그러나 친기업적인 판사 후보를 찾아내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어필’은 허구에 바탕을 둔 소설이지만 작가가 미국의 현재를 바라보는 눈을 그대로 반영한다. 존 그리샴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선거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선거에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풀린다면 뭐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작가가 그려낸 가상의 현실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자유와 정의를 믿었던 소시민들은 한때의 ‘달콤한 꿈’에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진 위력이 뼈저리게 드러난다. 특히 돈과 권력을 거머쥔 기득권층들이 때론 반목하고 질투하면서도 결국엔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씁쓸함을 넘어서 오금이 저린다. 원제 ‘The Appeal’.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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