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3년 성철 스님 입적

  • 입력 2008년 11월 4일 02시 54분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성철 큰 스님이 입적하기 직전 자신의 일생을 정리한 열반송이다.

1936년 출가해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방장실인 퇴설당에서 가부좌한 채 제자 스님들에게 기대 입적했다.

퇴설당에 남겨진 스님의 유품은 일생 동안 입었던 옷 한 벌, 30여 년 된 지팡이, 20여 년 된 대나무 삿갓, 검정 고무신 한 켤레, 1950년대 공책 한 권, 몽당 색연필 한 자루 등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소학교를 나와 1930년 진주중학교를 졸업한 스님은 19세 때인 1931년 결혼해 딸을 낳았다.

그러나 5년 뒤 출가해 구도의 길에 나선 스님은 그해 해인사에서 득도했다.

1967년 해인사 초대방장에 취임한 스님은 1981년 조계종 7대 종정을 맡았고 10년 뒤 종정에 재추대됐다.

스님은 신화적인 수행으로 한국 불교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려왔다.

16년간 날것만 먹는 생식을 하고 8년 동안 한 번도 드러눕지 않고 잠도 앉은 채 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조계종 종정 취임식 때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짧은 법어만 보낸 채 나타나지 않아 신선한 감동을 줬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먼저 해인사 대웅전의 불상을 향해 3000번 절을 하도록 했다. 물론 대부분의 정치인은 포기했다.

스님의 쉬운 듯하면서 어렵고 어려운 듯하면서 쉬운 법어는 발표 때마다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중 1986년 새해에 종교 간의 갈등과 다툼이 부질없음을 질타한 스님의 법어는 마치 오늘의 우리 모습을 예견한 듯하다.

‘노담과 공자가 손을 잡고 석가와 예수가 발을 맞추어 뒷동산과 앞뜰에서 태평가를 합창하니 성인 악마 사라지고 천당 지옥 흔적조차 없습니다. 장엄한 법당에는 아멘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소리 요란하니 검다 희다 시비 싸움이 꿈속의 꿈입니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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