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0년 그리스, 伊최후통첩 거부

  • 입력 2008년 10월 28일 02시 59분


1940년 10월 28일 오전 4시경 그리스 아테네 주재 독일대사관. 파티가 끝나갈 무렵 에마누엘레 그라치 이탈리아 대사는 이오아니스 메탁사스 그리스 총리에게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추축국 병력이 그리스 영토 내 전략거점들을 점령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이탈리아와 전쟁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의 침공선언이었다.

메탁사스의 답은 “오히(Οχι)”였다. 오히는 ‘아니다, 안 된다’라는 뜻의 그리스 말. 한마디로 ‘노’라고 단호히 거부한 것.(실제 메탁사스는 프랑스어로 “그럼, 전쟁이군(Alors, c'est la guerre)”이라고 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메탁사스의 거부 직후 이탈리아의 보호령 알바니아에 주둔해 있던 이탈리아군이 그리스 국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오던 그리스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은 이렇게 이뤄졌다.

메탁사스는 전 국민을 향해 “그리스인은 이제 우리 선조와 그들이 물려준 자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이제 조국을 위해,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신성한 전통을 위해 싸우자”고 호소했다.

이날 아침 그리스 국민은 거리로 뛰쳐나와 일제히 “오히”를 외치며 호응했고 수십만 명이 자원입대하러 군 입영사무소로 줄지어 행렬했다. 심지어 옥중의 공산당 지도자까지 코민테른의 지시를 무시하고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런 국민의 일치단결 덕분일까. 그리스는 개전 초기 성공적인 방어는 물론 강력한 반격작전을 펴 알바니아 남부를 점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듬해 독일군이 합류하면서 그리스 전역은 3년여 동안 추축국에 점령당해야 했다.

하지만 점령기간 중에도 그리스인은 끝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산악지대의 빨치산 부대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발목을 잡았고, 퇴각한 그리스 부대와 해군 함정도 영국군과 함께 북아프리카에서 전투를 계속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앞으로 우리는 ‘그리스인들은 영웅처럼 싸운다’가 아니라 ‘영웅들은 그리스인처럼 싸운다’고 얘기해야 할 것”이라고 그리스인의 저항정신을 칭송할 정도였다.

10월 28일은 이후 국가기념일인 ‘오히 데이’로 지정돼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맞서 용감하게 대항한 그리스인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날이 됐다. 매년 이날이면 그리스 전역은 물론 전 세계 그리스인 타운에서 각종 축제가 벌어진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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