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창작에 지친 대학로의 ‘스산한 가을’

  • 입력 2008년 10월 2일 02시 58분


손상원 이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얼마 전 서울 대학로에 ‘필립스’라는 카페를 냈다. 손 대표는 20여 년간 대학로에서 배우 겸 제작자로 일해 왔다. 대학로 터줏대감 중 한 명인 그가 부업으로 카페를 낸 것은 화제가 됐다.

손 대표가 카페를 낸 것은 “제작비 좀 벌어 보기 위해서”다. 지난해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4편의 창작극과 뮤지컬을 제작했던 그는 적지않은 적자를 봤다.

그는 “그동안 견뎌 봤는데 올해는 어렵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초연작으로 많은 관객을 모았던 ‘멜로드라마’도 겨우 제작비를 건진 정도다. 그는 “올해는 창작은 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환상동화’ ‘멜로드라마’ 등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작품들을 다시 올렸다.

김의숙 파임 대표는 ‘비언소’ ‘변’ 등 1990년대 히트작들에 참여했던 프로듀서다. 그는 올해 초 ‘민자씨의 황금시대’를 올려 좋은 반응을 얻고 한 달여간 앙코르 공연을 했다. 공연이 내려가고 “축하합니다”라고 덕담을 건넨 기자에게 한 그의 대답은 예상과 정반대였다. “3000만 원 적자 봤어요. 옛날 같으면 차 한 대를 뽑았을 텐데, 이번에는 차 한 대를 날렸네요.”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도 “이제 창작은 당분간 안 할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관료 홍보비 등이 너무 올라 웬만한 배우를 데리고 연극을 하려면 1억 원이 훌쩍 넘기 때문에 손익 분기점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연극 행사 기획 홍보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원래 연극인들이 가난을 업으로 진다지만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작품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른 연극을 제작하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적자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올해 연극계에는 3재가 겹쳤다고 한다. 5∼6월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대학로로 가는 길을 막고, 8월에는 올림픽이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최근에는 미국발 경제 위기가 터졌다. 연극인들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맨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인데 연극을 얼마나 보러 올지”라며 걱정하고 있다. 이래저래 연극인들에게 스산한 가을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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