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평범한 시어들로 길어올린 익숙한 일상의 통렬한 은유

  • 입력 2008년 8월 30일 02시 59분


진은영 시인
진은영 시인
◇ 우리는 매일매일/진은영 지음/134쪽·7000원·문학과지성사

진은영(38) 시인이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을 펴냈다. 2000년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년)을 통해 주목받았다.

그는 니체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철학 연구서도 냈으며 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이해하는 데 철학을 전공한 이력과 연관짓는 것을 경계한다.

‘불타는 지느러미/나는 시인입니다/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듣기 싫어요’(‘Summer Snow’에서)

익숙한 일상을 평범한 시어들로 엮어냈음에도 그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은 낯설고도 신선한 은유다. 그로 인해 행간 곳곳에서 언어가 펄떡이는 느낌이 든다. 허를 찌르는 듯하면서도 힘이 있다.

‘자꾸 밀어내도 빠르게 들어온다/회전문, 자의식, 컴컴한 창문이 여러 개 달린/너의 셋집에서 날아오는 냄새/비가 잿빛 가지 사이에/투명한 낚싯바늘을 드리운다’(‘거기,’에서)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선수처럼’(‘연애의 법칙’에서)

평론가 권혁웅 씨는 “언어와 대상이 일치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자 대상 자체인 그런 은유는 없다. 진 시인이 제시하는 은유는 모든 모순들, 모든 간격들을 수용하는 은유”라고 설명했다.

연인의 포옹을 샌드백을 감싸 안은 권투선수에 빗대는 것이 그렇다. 사랑이란 치고받는 싸움을 감내한다는 것, 결국 주저앉은 권투선수처럼 뜨겁게 포옹하는 중에도 인간이란 고독하다는 것. 연애의 법칙이란 그런 것이다. 힘들이지 않고 써내려간 듯한 시편은 이런 깊은 속내를 품고 있다.

이 시집의 미덕은 또 이질적인 단어들의 조합에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몇 시에서는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날리는 비유가 직설 화법보다 솔직하다. 이 비유는 시인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꽂힌다. 시적 치열함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은 시를 쓰면서 누추함을 느낀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그것이 비극이다/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밥 먹고 술 마시고/내내 기다리다/결국/서로 쏘았다’(‘70년대産’에서)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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