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86년 美대통령 클리블랜드 결혼

  • 입력 2008년 6월 2일 03시 01분


1885년 48세의 스티븐 클리블랜드는 ‘퍼스트레이디’ 없이, 제22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총각’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것이다. 그의 누이 로즈가 안주인 역할을 대신했다. 하나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듬해 6월 2일 그는 백악관 블루룸에서 친구의 딸인 프랜시스 폴섬과 결혼식을 올렸다.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결혼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퍼스트레이디로 기록됐다. 뉴욕의 웰스 칼리지를 갓 졸업한 프랜시스는 그때 21세였다.

클리블랜드는 동료 변호사이자 친구였던 오스카 폴섬이 1875년 세상을 떠난 뒤 유가족을 돌보고 재산을 관리했다. 클리블랜드는 프랜시스가 갓난아이일 때부터 폴섬 가족과 절친하게 지내왔다. 그는 프랜시스를 ‘프랭크’라 부르며 예뻐했고,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프랜시스가 대학에 진학한 뒤 클리블랜드는 프랜시스의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따님과 계속 연락하며 지내도 괜찮겠습니까.” 그날 이후 클리블랜드가 보낸 꽃다발로 프랜시스의 방에는 향기가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결혼 전 프랜시스가 유럽여행을 떠난 사이, 언론은 ‘대통령의 로맨스’를 감지했다. 한때 프랜시스의 어머니가 신붓감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곧 프랜시스가 포착됐다.

미모와 따뜻한 성품을 겸비한 젊은 퍼스트레이디는 미디어와 대중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클리블랜드에게 비판적인 언론들은 그를 ‘프랜시스의 남편’이라고 불렀다. 27년이라는 나이 차이, 사방의 끊임없는 관심 속에서도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클리블랜드는 1888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프랜시스는 백악관을 떠날 때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구와 장식들을 지금처럼 잘 관리해 주세요. 4년 후에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프랜시스의 말대로 클리블랜드는 1892년 백악관에 재입성했다. 그는 임기를 건너뛰어 대통령을 두 번 지낸 유일한 대통령이 됐다. 클리블랜드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시장이 폭락하여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는 사업 도산, 곡물가격 폭락, 실업 문제보다 정부 재정을 더 중요하게 다뤘다.

백악관을 떠난 뒤 클리블랜드 가족은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에 거처를 정했다. 클리블랜드는 190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6년 뒤 프랜시스는 프린스턴대 교수와 재혼해 살다가 1947년 세상을 떠났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관련기사]‘책갈피 속의 오늘’ 더보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