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의 돼지털] 표준만 있으면 다 되나?

  • 입력 2008년 2월 21일 14시 51분


지난 1월 31일 한국언론재단이 ‘뉴스ML을 통한 콘텐츠 유통 효율성 제고와 사업자간 시너지 창출'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뉴스ML은 국제출판전기통신회의(IPTC)가 발표한 국제 표준 뉴스 문서양식이다. 웹페이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확장성을 높여 만든 XML문서를 뉴스에 맞춰 재구성한 것이다.

현재 뉴스는 공급자인 매체와 수요자인 포털이나 증권사 대부분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주고받는다. 즉 100개의 공급처가 있으면 100개 형식으로 보내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가 뉴스ML을 이용하면 1개의 형식으로 통일돼 상당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와 달리 뉴스ML의 분류체계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까지 개정된 뉴스ML 분류체계로는 뉴스 콘텐츠 유통을 활성화하는데 문제가 많다는 것. 특히 종합지에 최적화돼 전문지가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 주요하게 제시됐다.

뉴스 분류체계는 매체마다 다르고, 포털 또한 제각각이다. 포털은 가능한 적은 수의 분류로 가능한 많은 뉴스를 소화하는 분류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매체는 분류체계 자체가 정체성을 의미한다. 해당 매체의 특성에 최적화된 분류체계로 콘텐츠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와 같은 경제전문지는 경제 분야에 세분화한 분류체계를, 동아일보와 같은 종합지는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분류체계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동아사이언스는 생명과학, 천문우주, 생태환경 등 과학기술 분야에 적합하게 세분화된 분류에 따라 과학기술 뉴스를 제작한다. 그런데 전문지가 하나로 모이는 포털은 모든 과학기술 뉴스를 과학이라는 한 분류로만 묶어 서비스한다. 이렇게 되면 동아사이언스가 아무리 다양하고 많은 과학기술 뉴스를 제공해도 대부분이 포털의 한 코너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고 만다. 포털에서는 전문지의 특성을 모두 감안해 분류체계를 수용하려면 수천 가지의 분류로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뉴스ML 분류체계는 이런 특성을 감안해 계속 수정돼왔다.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렇게 토론이 본 주제와 달리 뉴스ML 분류체계의 문제점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자 문화관광부 관계자가 나섰다.

“뉴스ML 표준은 이미 정해졌다. 이제 업체나 기관은 표준에 맞춰서 서비스, 즉 유통만 하면 된다. 왜 아직도 표준에 대해서, 분류에 대해서 말이 많은 것이냐.”

‘뭐든 정하면 따라오라. 그러면 다 된다.’ 이 말이 적합한 시절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시대를 떠나 정말 문화관광부 관계자의 말처럼 표준을 정하면 다 되는 걸까?

지난해 7월부터 정부는 평, 돈, 근 같은 비(非)법정단위를 쓰면 벌금을 물리는 엄격한 규제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용어는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와 평, 근, 돈이 중심인 척관법을 써오다 1905년 미터법을 함께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다 1961년 국제단위계(SI)인 미터법을 법정단위로 채택하고 척관법 사용을 금지했다.

이성적으로 보면 미터법이 편리하고 명쾌해 미터법만 사용할 것 같다. 그러나 미터법을 표준으로 정하고 척관법 사용을 금지한 지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평과 돈 같은 척관법을 쓰고 있다.

미터법을 볼 때 잘 만들어진 표준도 생활에 정착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표준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날로그에서 이어온 교훈이나 특성조차 고려하지 못하면서 디지털 시대를 여는 뉴스ML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속된 토론에서 뉴스 공급자와 뉴스 구매자 모두 상대가 먼저 뉴스ML을 도입해야 따라갈 수 있다는 ‘닭과 달걀의 우선순위 논쟁’이 계속 됐다. 당분간 뉴스ML 활성화 문제는 여러 가지 사정이 얽힌 탓에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고풍의 돼지털

최근 생활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로 바뀌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차이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에서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디지털을 띠와 결합해 만든 ‘돼지털’은 디지털 세상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고풍의 돼지털’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박응서 동아사이언스 기자 gopoong@donga.com

박응서 기자는

1990년 처음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린 뒤 한 때는 컴퓨터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당시 컴퓨터에 낯설던 사람들에게 컴도사로 불리던 추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를 멀리 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전화보다는 메신저나 e메일을 좋아하는 걸 보면. 고풍스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아날로그의 감수성과 디지털의 냉철함 모두를 껴안아 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의 냉험함에 두 손 들고 마는 평범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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