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제1원리, 신의 자리 넘보다…‘최종이론의 꿈’

  • 입력 2007년 12월 15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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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이론의 꿈/스티븐 와인버그 지음·이종필 옮김/480쪽·2만 원·사이언스북스

최종이론이란 무엇일까. 이 책의 부제처럼 자연의 최종 법칙이다. 스티븐 와인버그(사진)의 표현에 따르면 “어떤 진실들은 그것들이 환원될 수 있는 다른 진실보다 덜 근본적이라는 위계관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 그것이 최종이론이다.

모든 이론의 근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가 떠오른다. 복잡하고 다양한 자연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원주의도 떠오른다. 최종이론이 ‘물리학 제국주의’ ‘거대 이론’으로 비판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최종 이론이 무엇인지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거기에 그쳤다면 갖가지 생소한 과학 용어로 가득한 이 책을 꼭 읽을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이 책은 최종이론을 둘러싼 과학 철학 종교적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물리학도가 아니라도 읽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최종이론에 쏟아지는 화살을 방패로 막아가며 다시 창을 던진다.

저자는 현대 입자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표준모형을 발표했고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저자의 표준모형은 최종이론의 근간이 된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전자기력과 약력(핵이나 소립자들에서 일어나는 약한 상호 작용력)이 실제로는 약전기력이라는 하나의 힘의 다른 형태이며 강력(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하여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힘으로 중력이나 전자력보다 강한 힘이라는 뜻)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만물 이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이론이다.

문제는 최종이론이 소립자처럼 아주 작은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것. 자연 현상을 설명하지만 우리 일상의 용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고 더군다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철학자들은 실증주의의 눈으로 관측되지 않고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을 과학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인식론의 측면에서 “공간과 시간은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의 일부분이 아니다. 물체와 사건을 연관시킬 수 있게 해 주는 마음속의 선험구조”라고 말한 칸트처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 ‘불가사의’를 신의 섭리로 설파했던 종교에 최종이론은 신의 자리를 넘보는 위험한 존재다.

이 책을 쓴 때는 1992년. 최종이론을 실험으로 입증할 초전도 초대형 충돌기 사업을 둘러싼 논쟁도 결국 과학을 바라보는 근본적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과 종교에 심한 맹공을 퍼붓는다. 종교를 ‘늙고 정신 나간 숙모’라 불렀고 과학철학은 과학의 역사와 발견들에 대한 예쁜 광택으로 보인다고 비판한다. 환원주의라는 비판에 대해 그 자신이 ‘골수적’이라 표현할 만큼 환원주의를 견지하지만 소립자물리학 이론만 흥미롭고 심오한 것이라 생각하는 절대적 환원주의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철학자들의 인식론과 달리 자연의 근본 법칙은 사람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으로 맞선다.

최종이론이란 최신의 물리학 이론을 둘러싼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대립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렵더라도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올해 5월 저자의 미국 텍사스주립대 연구실에서 이뤄진 옮긴이와 저자의 인터뷰도 흥미롭다. 영화 ‘매트릭스’ 1편을 좋아한다는 세계적 물리학자의 대답도 꼭 읽어보라. “현실이란 뇌가 해석하는 전기적 신호”라는 이 영화는 저자의 실재론과 다른 철학을 지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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