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들 구하려 마지막까지 조종간 놓지 않았다”

  • 입력 2007년 11월 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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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강원 인제군 현리에서 발생한 육군 헬기 추락사고 당시 사고기의 부조종사였던 고 왕태기(39·학군 29기·사진) 소령이 동료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6일 육군에 따르면 왕 소령이 조종한 UH-60 헬기는 이륙 직후 15m 상공에서 뒤따라 이륙한 다른 UH-60 헬기와 날개끼리 충돌하면서 동체 뒷부분이 잘려 나가는 위기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왕 소령은 헬기에 탑승한 병사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몸을 최대한 낮추라”고 지시한 뒤 조종사인 이모(31) 준위와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서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하지만 헬기는 곤두박질치듯 하강했다.

왕 소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고 지상에서 헬기에 탑승하려고 기다리던 병사들을 피해 기체를 추락시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았다고 육군은 밝혔다. 당시 사고 헬기가 이륙한 지점에서 약 50m 떨어진 활주로 인근에 200여 명의 장병이 다음 헬기를 타기 위해 모여 있었다.

사고 직후 중상을 입은 왕 소령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고, 헬기에 타고 있던 16명의 장병과 다른 사고 헬기에 탑승한 5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부인과 11, 9세 남매를 둔 왕 소령은 바쁜 훈련 일정으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에게 매일 안부전화를 할 만큼 효자였고, 사고 당일에도 고향에 있는 부모에게 안부전화를 했다고 육군은 전했다.

사고 직후 부인 박희숙(38) 씨는 “‘야간비행이라 안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며 조종복을 챙겨 입고 나갔는데 왜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느냐”고 울먹였다. 아빠의 사망 소식을 모르는 어린 남매는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아빠를 밤새 기다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왕 소령의 영결식은 7일 오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소속 부대인 육군항공작전사령부 부대장(葬)으로 거행된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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