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심장? 뇌? 영혼의 거처는 어디인가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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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시대 네덜란드 화가 에드바어르트 콜리르가 그린 ‘바니타스 정물’. 덧없음이나 허무를 그린 대부분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두개골이나 왕관 등이 등장한다. 사진 제공 해나무
바로크시대 네덜란드 화가 에드바어르트 콜리르가 그린 ‘바니타스 정물’. 덧없음이나 허무를 그린 대부분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두개골이나 왕관 등이 등장한다. 사진 제공 해나무
◇영혼의 해부/칼 지머 지음·조성숙 옮김/488쪽·2만2000원·해나무

동양에서 마음은 심장에 가깝다. 한국인들은 마음을 말할 때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리킨다. 마음을 칭하는 한자어 심(心)과 정(情)에는 모두 심장을 뜻하는 심(心)자가 들어간다. 서양인들에게 마음은 뇌에 가깝다. 그들이 마음을 말할 때는 머리를 가리킨다. 그들에겐 마음을 뜻하는 마인드(mind)와 가슴을 뜻하는 하트(heart)가 따로 있다.

뇌과학의 역사를 꿰뚫는 이 책은 서양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난 기점을 1662년 여름 영국 옥스퍼드에서 이뤄진 한 해부 사건으로 꼽는다.

옥스퍼드 의대 출신의 토머스 윌리스라는 의사가 뇌세포를 파괴하지 않고 시도했던 이 해부는 영혼이 심장이 아니라 뇌에서 작동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이 의미심장했던 것은 당시 해부 현장에 참석했던 인물들이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영국 왕립학회 회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윌리스는 2년 후 이를 토대로 ‘뇌와 신경의 해부학’을 발표했고, 왕립협회 회원이자 훗날 영국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게 되는 크리스토퍼 렌이 그린 스케치가 이 책에 실리면서 한동안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스케치’로 불린다.

이 책은 서양에서 영혼의 서식처로서 뇌를 주장한 플라톤적 전통보다 심장을 중요시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이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4000년 전 이집트에서도 미라를 보존하기 위해 뇌는 인정사정없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던 반면 심장은 그 사람의 존재와 지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잘 보존해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뇌를 심장의 열기를 식히는 냉각장치로 여겼고, 고대와 중세까지 해부학 최고의 권위자였던 갈레노스도 뇌를 우주적 정기가 잠시 머무는 텅 빈 공간 내지 이를 심장으로 불어넣는 펌프 정도로만 봤다.

당시에는 죽으면 금방 흐물흐물해지는 뇌가 불멸을 상징하는 영혼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신성 모독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이성을 강조한 데카르트도 “정신은 뇌와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이 책에 따르면 윌리스는 뇌신경이 화학물질을 통해 전기충격(당시는 정기)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기억을 형성하고, 상상을 이뤄내며, 꿈을 꾸게 한다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바로 영혼의 역할이었다. 심장과 간이 담당한다고 여겼던 감정과 욕망, 식욕도 뇌의 작용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도 밝혀냈다. 신경학이란 용어도 윌리스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책은 이런 뇌연구 혁명이 발생하기까지 철학 신학 해부학 천문학 연금술 그리고 영국의 청교도혁명을 종횡무진으로 가로지른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윌리스의 업적이 150년간 파묻히게 된 게 제자였던 존 로크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철학가가 된 로크는 관념의 작동과 융화에 관심을 기울여 정작 그 관념의 토대가 되는 물질의 작용에 대한 스승의 업적을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 겨냥한 대상은 로크가 아니라 프로이트다. 흔히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무너뜨린 근대 3대 이론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꼽힌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바로 프로이트에게 돌아간 그 자리를 윌리스에게 돌리려는 뇌과학자들의 비원(悲願)의 일단을 읽어낼 수 있다. 윌리스를 시원으로 하는 ‘영혼에 대한 과학’의 흐름을 ‘영혼에 대한 서사시’로 틀어버린 이가 프로이트였기 때문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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