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믿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 우선, 믿음에는 진실과 자유가 추가로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말씀을 굳이 하실 까닭이 없지 않은가. 또한 방향을 달리하여 생각해 보면, 자유의 전제는 진실에 있고, 진실의 전제는 믿음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당시 이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예 노릇을 한 일이 없는데 왜 자유를 운운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차원이 다른 답변을 하셨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노예입니다.” 즉, 정말 중요한 기준은 외부에 있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내부로부터 자유로운가?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어 있지 않은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질문은 다음의 질문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지금 내면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을지라도 결코 자신은 속일 수가 없는 법이다. 누군가를 속이면 스스로 노예가 된다. 그것도 가장 비참한 자신의 노예가 된다. 자신의 소중한 자유를 바로 자기 스스로가 짓밟는 셈이다. 알레세이아란 ‘잊힐 수 없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라고 한다. 참으로 일리 있는 표현이다. 진실이야말로 감출 수 없는 것이며, 잊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 일부 유명인사의 학력 위조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 전체가 홍역을 앓고 있다. 믿었던 사람의 학력이었는데, 그 안에 진실은 없었던 모양이다. 사연이 있었겠으나 그동안 속은 사람이나 속인 사람이나 모두 자유를 박탈당하고 살았던 것이다.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으로써 자신 안에 참다운 자유가 살아있음을 발견하게 되면 더욱 좋겠다. 그때 맛보는 행복을 그 누가 빼앗아 갈 수 있겠는가.
현우식 목사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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