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제복이 자랑스러운 나라

  • 입력 2007년 6월 5일 1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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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이 쓰는 고풍스러운 보비 헬멧은 19세기 빅토리아시대에 만들어졌다. 경찰의 바른 자세와 권위, 시민 보호를 상징한다. 고풍스러운 헬멧을 쓰고 유유히 거리를 순찰하는 영국의 경찰은 이층 버스와 함께 런던의 명물이다. 길거리에서 경찰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도 많다. 순찰차에 탈 때 불편하고 도둑을 쫓을 때도 잘 벗겨지지만 런던 경찰은 아직도 이 모자를 착용한다.

우리 경찰은 제복보다는 사복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경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 경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돼 독재정권 시대를 거치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칠해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 폭행 사건처럼 제복을 부끄럽게 하는 사건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재임 시절 경찰관들에게 제복 입고 출퇴근하기를 권장했다. 15만 경찰이 제복을 입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면 소매치기나 성추행범이 움찔할 것이고 범죄도 줄어들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허 전 청장은 2대 경찰관 집안이다.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4년 동안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경찰로 전직했다. 그가 외교관을 할 때 장모는 주변에서 “사위 뭐하노”라고 물으면 “외교관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러던 장모가 사위의 전직(轉職) 후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사위 내무부에 있어”라고 말했다. 허 전 청장이 “제 직업을 부인하시면 저는 제 결혼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따지고 나서야 장모는 ‘내무부’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경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 상류계급 출신이 경찰에 많이 지원한다. 영국의 영향을 받아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에서는 경찰이 되려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고 자긍심도 높다. 이들 나라는 도로에서 걷잡을 수 없는 무질서가 벌어졌다가도 경찰이 나타나면 일시에 질서가 회복된다.

1960, 70년대에는 사관학교 생도들이 제복을 입고 지나가면 울바자 너머로 처녀들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 시절에는 신체 건강하고 공부를 꽤 하는 고등학생이라야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선호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져 국비로 교육을 시키는 사관학교의 메리트가 줄어든 편이다. 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은 “군 출신 원로들이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우려하는 대목”이라면서 “건강한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의욕이 강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녀들을 사관학교에 많이 보내야 국가 안보가 튼튼해진다”고 말했다. 최근 병역특례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린 사람들이다. 국가 안보의 무임승차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고 민간 분야의 자리까지 독식해 ‘너무 해 먹는다’는 반감이 사회 일각에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군의 사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젊은 군인과 전의경을 향해 죽봉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국가 안보나 사회 안전과 질서에 대한 의식은 아예 없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본새는 더 말하기도 신물 나지만,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군대 가서 썩지 말고…’ 같은 군 비하 발언은 국군통수권자로서 절대로 해선 안 될 말이다. 대통령의 군 비하 발언에 현역과 예비역들이 모두 분노했다는 민 장군의 전언이다. 군 지휘관은 부하들로부터 존경받는 인격을 갖춰야만 그 인격을 믿고 따르는 높은 수준의 복종을 끌어낼 수 있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사회가 안정을 찾아 가던 1956년 6월 6일을 현충일로 제정해 52번째 현충일을 맞는다. 6·25전쟁에서 40만 명 이상의 군인과 경찰이 사망했다. 제복의 사나이들이 산하에 뿌린 피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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