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잘했어요” 칭찬에 재활 꿈 쑥쑥

  • 입력 2007년 4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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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벽하게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이시욱 군(오른쪽)이 김문자 교사와 감각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을 하던 중 칭찬이 이어지자 모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고양=이동영  기자
아직 완벽하게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이시욱 군(오른쪽)이 김문자 교사와 감각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을 하던 중 칭찬이 이어지자 모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고양=이동영 기자
교실은 칠판과 책걸상이 있고 여러 학생이 어우러져 공부하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 가지 못할 만큼 장애가 심하거나 질환을 앓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선생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이 자라는 교실이 있다.

이 교실에는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이 있다. ‘순회학급’으로 불리는 이 교실의 학생은 장애인 학교에도 가지 못할 만큼 거동이 불편한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다. ‘순회학급’의 학생들은 지금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지 못하는 처지지만 헌신적인 교사들의 방문수업을 통해 언젠가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것이라는 꿈을 키우고 있다.

○ 희망이 싹트는 교실 밖 교실

17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이시욱(7) 군의 집에서 수업이 시작됐다. 뇌병변 1급인 이 군은 좋다는 뜻의 ‘응’이라는 단어를 말할 뿐 다른 말은 거의 하지 못한다. 혼자서는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해 특수 의자에 앉아 수업을 받는다.

김문자(33·여) 교사는 이 군이 좋아하는 북과 블록, 장난감 자동차 등을 교재로 가져와 손의 감각과 근력을 키워 주는 수업을 했다.

김 교사는 이 군이 북을 한 번 칠 때마다 큰 소리로 반복해 “잘했어요”라고 외쳐 주었다. 무표정한 이 군은 김 교사의 칭찬이 10여 차례 반복될 때쯤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김 교사는 “시욱이는 내가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려 하지만 그게 신체적으로 어려워 힘이 드는 것일 뿐”이라며 “계속 노력하면 상당 부분 의사 표현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군은 공식적으로 고양시 덕양구 성사초등학교 1학년 3반 학생으로 순회학급 담임인 김 교사의 지도를 받는다.

또래 1학년 학생이라면 덧셈, 뺄셈과 받아쓰기를 해야 할 때지만 이 군에게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유아놀이겠지만 감각과 인지능력을 키우는 수업이 그에게는 희망을 키워 가는 수업이다.

이 정도의 수업을 한다고 학교로, 혹은 사회 속으로 들어가 남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기본학습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김 교사에게 던졌다.

김 교사는 “헌법 제3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관계없이 교육을 받는다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자칫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장애 학생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 장애정도 따라 수업내용 달라

화가가 꿈인 이나라(11) 양은 16일 오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집에서 김 교사와 ‘순회학급’ 수업을 했다.

친구들은 5학년에 다니지만 면역계 희귀 질환을 치료하느라 학교를 쉬어 이 양은 3학년 진도를 나가고 있는 중이다. 몸을 가누기 불편한 신체장애는 아니지만 이 양의 경우도 ‘건강장애’를 앓는 것으로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순회학급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이 양의 어머니 권미진(40) 씨는 “그동안 집에 있으면서 학업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책과 선생님을 만나게 돼 기쁘다”며 “학교에 가지 못하는 건강장애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3명의 학생을 담당하며 한 주에 두세 번씩 찾아가 수업을 한다. 한 회 수업은 40분씩 3교시. 장애 정도와 인지능력에 따라 아이들마다 수업내용은 다르다.

경기도교육청은 시군마다 1, 2개 학교에 순회학급을 편성하고 특수전공 교사를 배치한 뒤 교사 1인당 3∼5명의 학생을 배정해 집으로 찾아가 수업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에는 147명의 순회학급 담임교사가 근무한다.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은 가까운 학교나 지역 교육청을 통해 순회학급 교육을 신청할 수 있으며 교육청은 학생 수요를 파악해 순회학급 편성 대상 학교를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순회학급을 지정하려면 학교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경기도교육청 김형숙 장학사는 “순회학급은 교육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공교육의 장점을 잘 표현한 제도”라며 “학교장이 장애 학생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의지가 뒷받침돼야 더 많은 순회학급이 만들어져 장애어린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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