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이해찬과 한명숙의 人相學

  • 입력 2006년 3월 2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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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이해찬 전 국무총리 일행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났다. 용산고 동기동창들과 함께 휴게소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있었다. 일행 중 A 씨가 필자를 보고 반색하며 “이 총리에게 인사나 하자”고 권유했으나 사양했다. 이 씨는 총리를 그만두면서 “열흘간 폭우가 쏟아져 옷이 흠뻑 젖었다”고 말했다. 필자도 폭우 쏟아질 때 물 한두 바가지 보탠 처지에 시침 딱 떼고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할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일행은 골프 두 팀을 짜기에 맞는 숫자였다. A 씨에게 “골프 치러 가느냐”고 묻자 “이 총리 위로 겸 골프도 치고 술 한잔하러 간다”고 대답했다. 전 총리 일행은 지리산 자락 남원에서 동편제 판소리를 감상하고 광주 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쳤다. 이 전 총리는 ‘자숙하지 않고 바로 골프 친다’는 말을 듣기 싫다며 그 시간에 지리산 등반을 하고 바둑을 두었다. 그가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는 퇴임 후 심경이 흥미롭다.

“언론이 본질을 보지 않고 지엽적인 것을 따져 안타깝다.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 파워 스트러글(권력 투쟁)에 희생됐다.”

A 씨는 총리 시절에 “생각이 다른 쪽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어휘 선택을 좀 신중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몇 차례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가 친구의 조언대로 험한 인상(人相)을 펴고 겸손한 언어로 말했더라면 폭우는 하루 이틀에 그치고 말았을지 모른다.

이 전 총리와 한명숙 총리 후보가 풍기는 분위기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있다면 인상이다. 필자가 주말에 만난 사람들은 “총리 후보의 인상이 참 좋더라”고 말했다. 얼굴이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험악한 표정으로 독설을 퍼붓던 총리를 겪어서인지 한 총리 후보의 부드러운 인상이 돋보인다.

얼굴이 밝은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통령제하의 총리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여성 총리가 나오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한 후보가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로서의 역량과 균형 있는 사고를 갖추었는지에 관해서는 걱정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한 후보의 일생은 흔들림 없이 한쪽 길을 걸은 삶이다. 6개월 같이 산 남편이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자 13년간 옥바라지를 했다. 본인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2년간 옥고를 치렀다. 남편이 석방될 가능성이 ‘1%도 없는’ 상황과 독재정권의 감시 속에서도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았다(홈페이지 ‘걸어온 길’). 한 후보의 온화한 얼굴 뒤에는 이렇게 서릿발 같은 면모가 숨어 있다. 한 후보 부부의 옥살이 내력은 이 전 총리가 관련된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는 다른 이념형이다.

한 후보의 대북 인식에는 균형을 잃은 편향이 엿보인다. 그는 미국 의회가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킨 데 대해 부정적이다. 한 후보가 ‘요덕 스토리’를 관람할 시간이 없으면 틈날 때 ‘수용소의 노래, 평양의 어항’이라도 읽어 봤으면 좋겠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읽은 책이다. 한 후보는 북한의 슈퍼노트(위조 달러) 제조에 대해서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평화 정착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북한의 위조 달러 제조는 국내외 정보기관에서 거의 이론(異論)이 없는 사실이다.

한 후보는 환경부 장관 시절 새만금 반대 삼보일배(三步一拜)에 참여했다. 총리가 환경근본주의 사고를 갖고 있다면 대형 국책사업은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것이다. 과거사법이 무르다며 기권했는데 대한민국 건국과 6·25전쟁에 대한 사관(史觀)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이 전 총리는 얼굴 표정과 속마음이 일치해 오히려 판독하기 쉬웠다. 한 후보는 살아온 내력을 보면 치열한 이념 지향형인데도 얼굴빛은 온화하고 미소가 밝다. 한 후보의 인상학은 그래서 더 난해(難解)하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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