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70>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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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해따라 겨울은 빨리 깊었다. 겨우 시월 초순인데 매서운 북풍이 몰아쳐 굶주린 데다 입성까지 신통치 못한 초나라 군사들을 괴롭혔다. 그렇게 되자 행군은 더 더뎌지고 그만큼 길은 늘어났다. 박랑(博浪)에서 30리도 안 되는 곡우(曲遇)에 이르러 하룻밤을 지새운 초나라 군사들은 다시 이틀을 더 걸어서야 대량(大梁)에 이르렀다.

“성안을 뒤져 곡식을 거두어 오라. 곡식을 숨기고 내놓지 않는 것들은 죽여도 좋다.”

패왕이 그런 명을 내려 곡식을 거둬들이게 했다. 대량은 한때 위나라의 도읍이었을 만큼 큰 성읍이었다. 굶주림에 눈이 뒤집히다시피 한 초나라 군사들이 성안을 비로 쓸 듯 긁어 모으자 비로소 전군이 며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군량이 거두어졌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별로 좋지 않던 대량의 인심은 그날 이후 패왕과 초나라에서 영영 돌아서버렸다.

“자, 이제 진류(陳留)로 가자. 진류도 작은 성이 아니니 거기 가면 다시 우리 대군이 배불리 먹을 곡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옹구 고양 외황 수양까지 하룻길로 큰 성읍들이 이어져 있다. 거기서 기력을 길러 우(虞) 탕(탕)으로 나아가면 그 다음은 바로 팽성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다.”

대량 성밖에서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하룻밤을 쉬게 한 패왕이 다음 날 일찍 장수들을 모아 놓고 그렇게 말했다. 종리매가 나서서 그런 패왕을 말렸다.

“아니됩니다. 대왕께서 말씀하시는 그 성읍들은 모두 근년 팽월이 휘젓고 다닌 곳입니다. 작년에 대왕께서 몸소 평정하셨으나, 그 뒤 다시 팽월의 입김이 닿아 우리 양도(糧道)마저 끊기고 말았습니다. 우리 군사가 지나간다는 것을 팽월이 알면 결코 그냥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늙은 쥐새끼부터 잡고 가자. 숨은 곳을 뒤져 찾기라도 해야 할 판에 제 발로 과인 앞에 나타난다면 그보다 더 잘된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게 꼭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팽월은 작년 대왕께서 뒤쫓던 그 팽월이 아닙니다. 우리 대군이 광무산에 묶여 있는 지난 열 달 동안에 다시 기세를 회복한 팽월은 거느리고 있는 군사만도 3만이 넘게 불어났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우리 군사는 또 작년 팽월을 쫓던 때의 그 정병 5만이 아닙니다. 머릿수는 아직도 5만을 일컫지만 그 실상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근거지로 내몰리고 있는 잡군(雜軍)입니다. 팽월의 날카로운 기세를 전처럼 쉽게 꺾어 낼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거기다가 우리가 팽월과 싸우는 동안 한왕이 대군을 몰아 우리 등 뒤를 들이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팽성으로 돌아가 뒷날을 기약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도 속으로는 으스스했다. 그러나 타고난 기백이 그런 종리매의 말을 그냥 참고 들어 넘길 수 없게 만들었다.

“과인은 지난날 3만 군사로 한왕이 이끈 56만 대군을 깨뜨렸다. 사수(泗水)가 저들의 붉은 피로 물들고 수수(휴水)가 저들의 시체로 막혀 흐르지 못하던 것을 그대도 보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한왕은 과인에게 화평을 애걸하고 제 아비어미와 계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찌 감히 약조를 어기고 과인을 뒤쫓는단 말이냐?”

그렇게 종리매에게 꾸짖듯 말했다. 워낙 처지가 고약하게 되어서인지 종리매가 움찔하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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