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간 큰 가족’&‘링2’

  • 입력 2005년 6월 3일 05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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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상속 받기 위해 남북통일이 된 것 같은 자작극을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드라마 ‘간 큰 가족’. 사진 제공 두사부필름
유산을 상속 받기 위해 남북통일이 된 것 같은 자작극을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드라마 ‘간 큰 가족’. 사진 제공 두사부필름
◆ ‘간 큰 가족’… “통일이다!” 그러나 겉도는 웃음

영화 ‘간 큰 가족’은 통일 자작극이라는 아이디어 하나에 목숨을 걸고 ‘웃기지, 웃기지’ 한다. 짙은 영혼의 소유자 감우성이 완전히 망가지며 몸을 바쳤고, 코미디 보증수표 김수로가 침을 튀겨 가며 애드리브를 난사한다. 정말 이 둘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 ‘간도 크다’는 얘기를 들을 뻔했다.

실향민 김 노인(신구)은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게 소원이다. 어느 날 김 노인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되고, 큰아들 명석(감우성)은 아버지에게 50억 원짜리 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전 재산을 통일사업에 기부 하겠다”는 아버지의 유서를 확인하고 난감해 하던 명석. 그는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3류 에로비디오 감독인 동생 명규(김수로)와 짜고 가짜 TV 뉴스와 신문을 만들어 통일 자작극을 벌인다.

‘통일 자작극’이란 아이디어는 분단 상황인 한국에서 반짝이는 영화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반짝이는 아이디어 외엔 별다른 걸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핵심 아이디어가 영화 속 여기저기서 총체적으로 스며나도록 만드는 대신, 이 아이디어에 수동적으로 봉사하는 에피소드들을 일렬종대로 쫙 세워 놓는 간편한 방식을 택함으로써 ‘치고 빠지는’ 기획영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종반 들어 이 영화가 웃음에서 눈물과 감동으로 그 모드를 바꿀 때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닌, 오로지 배우 신구 개인의 연기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일 자작극’이란 소재가 갖는 절실함과 리얼리티를 왜 미리 포기해 버렸을까.

‘알포인트’ ‘거미숲’으로 자의식을 파고 또 파 들어 가던 감우성은 이번에 ‘아줌마 파마머리’에다 ‘여중생 깻잎머리’까지 해가며 관객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그의 이번 선택은 배우로서의 변신과 연기 폭의 확대라기보다는 왠지 잠시 쉬어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에로배우로 출연하는 신이의 ‘또 그런’ 연기는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일부 장면을 북한에서 현지(금강산의 온정각 휴게소와 김정숙 휴양소, 목란관 등) 촬영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간 큰 마케팅’을 하겠다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갈기는 ‘두더지 게임’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설치해 어떻게든 논란을 만들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외피를 부풀리려는 이런 정력의 일부를 알맹이를 다지는 데 쏟았더라면 한결 더 좋았을 것이다. 조명남 감독의 데뷔작. 9일 개봉. 12세 이상.

◆ ‘링2’… “귀신이다!” 그래도 아쉬운 공포

‘링2’는 일본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 하며 일본인 감독 나카다 히데오를 불러들여 제작했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일본 공포영화 ‘링’을 리메이크해 톡톡히 재미를 본 할리우드가 이번엔 오리지널 ‘링’ ‘링2’를 연출한 일본 감독 나카다 히데오를 아예 할리우드로 데려와 리메이크 속편 ‘링2’를 맡겼다. 감독이 그대로면 할리우드판은 여전히 무서울까, 아니면 더 무서울까.

3일 개봉되는 ‘링2’는 본질적인 문제 하나와 더 본질적인 문제 하나를 안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 영화가 동양적 공포 감성과 서양적 공포 공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죽도 밥도 안 되었다는 것. 그리고 더 본질적인 문제는 안 무섭다는 것이다.

레이첼은 사마라의 저주를 피해 아들 에이단과 함께 지방 소도시로 숨어든다. 그러나 사마라는 여기까지 쫓아와 에이단의 몸속으로 자꾸 들어가려 한다. 레이첼은 사마라가 죽은 원인을 파헤치는 한편, 에이단의 몸에 깃든 사마라를 쫓아내려 최후의 수단을 사용한다.

속편은 죽음이 전파되는 매개체인 비디오테이프엔 관심이 없다. 나오미 와츠와 데이비드 도프만을 전편에 이어 모자(母子)로 등장시키면서, 아들을 위해선 죽음도 불사하는 강력한 모성애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엄마와 사마라의 대결에 승부를 건다는 뜻.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사마라의 카리스마가 심하게 달리는 것이다.

이 영화는 관객을 어떤 방식으로 무섭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컨센서스(의견일치)가 부족하다. 원혼(’魂)을 등장시켜 마음을 스산하게 만드는 ‘동양적 공포’를 줄 것인지, 몸속에 들어간 악령에 맞서 싸우는 엑소시즘을 통해 ‘서양적 공포’를 줄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취할 것인지 우물쭈물한다. 사마라는 심술궂은 ‘처키’인지, ‘엑소시스트’의 소녀 ‘리건’인지, 일본판 ‘링’의 ‘사다코’인지 헷갈린다.

일본 감독이 할리우드에 너무 쉽게 녹아들어 간 건 아닐까. 영화는 물이 거꾸로 치솟고 사슴이 떼로 덤비고 우물 안을 절지동물처럼 기어오르는 사마라의 모습(유일하게 무서운 장면이다) 등을 통해 다분히 미국적인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선보인다. 엄마는 마지막 순간 “I'm not your fucking mommy!(날 엄마라 부르지 마!)”라는, 통쾌하고 적당히 유치한 할리우드적 대사를 사마라에게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 순간 ‘링’은 온데간데없는데….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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