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엽기코믹 작가’ 이우일씨, 神話 재해석에 도전

  • 입력 2004년 6월 13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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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를 각색한 ‘호메로스가 간다’를 펴낸 이우일씨. 모교인 홍익대를 찾은 그는 교정에 있는 말 조형물을 보더니 “꼭 트로이 목마 같다”며 “이곳에서 촬영하자”고 제안했다. 아래는 늙은 호메로스(오른쪽)와 제자 카피스. 원대연기자
그리스로마 신화를 각색한 ‘호메로스가 간다’를 펴낸 이우일씨. 모교인 홍익대를 찾은 그는 교정에 있는 말 조형물을 보더니 “꼭 트로이 목마 같다”며 “이곳에서 촬영하자”고 제안했다. 아래는 늙은 호메로스(오른쪽)와 제자 카피스. 원대연기자
11일 오전 서울 홍익대 앞의 한 카페에서 만난 만화가 이우일씨(35)는 먼저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5개월간 금연에 성공했는데 하루 한 갑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호메로스가 간다’를 그리는 동안 끊었는데 첫권을 끝내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요.”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호메로스가 간다’(전 10권 예정·김영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만화화한 작품이다. ‘또 그리스로마 신화?’ 라는 반응을 예상한 듯, 그는 “이야기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나온 책들의 ‘재방송’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원전을 한 번 비틀었기 때문에 신화에 익숙한 독자들이 오히려 더 재미있어 할 거예요.”

2001년 기획된 이 작품의 탄생에는 많은 진통이 따랐다. 60여권의 참고문헌을 공부하고 신화 관련서를 쓴 저자들을 직접 만나 조언도 구했다. 1년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누드크로키 수업을 받았고 그리스도 두 차례 답사했다. 그렇게 450쪽의 원고를 지난해 완성했다. 그러나 새로운 개념과 그림 스타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전부 ‘엎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기자는 1년 전 그를 만났을 때 폐기된 원고를 잠깐 본 적이 있다. 어딘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 같은 분위기였다.

“그땐 좀 ‘어린이 취향’ 그림이었잖아요. 관련 책들을 읽고 그리스 미술을 접하다보니 옛날 그리스 양식에 보다 가깝게 그리고 싶어졌던 거죠. 원고를 엎은 것도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니 아깝지 않더군요.”

새로 그린 만화의 선은 거칠지만 그림체는 사실적이다. 그리스인의 곱슬곱슬한 흑발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물론 신들의 모습과 대사에선 ‘엽기코믹 작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을 읽으면서 나도 변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책을 펴든 독자들은 이우일의 작품이라고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뿐 아니라 신화도 변신을 겪었다. 신들의 탄생에서 시작해 신화들을 쭉 나열하는 책들과 달리, 그는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진 호메로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스토리의 흐름을 새로 만들어냈다. 호메로스에 관해 밝혀진 역사적 사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작품 속 호메로스는 창작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신화를 이야기하는 데 인간의 입을 빌린 이유는 인간사를 다루기 위함이었다. 영웅을 동경하는 청년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1권의 내용. 마침 영화 ‘트로이’가 인기를 끌고 있어 작가의 감상을 물어보니 “신화를 단순화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재미있게 본 영화”라며 “창과 방패를 든 병사들의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서 호메로스는 그리스 전역을 방황하며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난다. 작가는 앞으로 철학 및 자연과학까지 자연스럽게 아우르며 그리스 신화가 서양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짚어볼 계획이다.

인간의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그가 아테네와 크레타, 산토리니를 둘러보면서 가슴에 담아둔 것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먼지만 날리고 땡볕 피할 곳 하나 없는 아크로폴리스에 안 갈 수는 없었죠. 하지만 그리스를 다녀보니 보통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아요. 결혼식에서 먹고 즐기는 모습들이 우리나라 잔치와 비슷하고, 여자들도 예뻐요. 다들 신화 속 소녀들 같았어요(웃음).”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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