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19>이상형만 좇다 놓치는 것들

  • 입력 2003년 6월 29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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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얼마 전 나는 수도서원 35주년을 조용히 기념하며 여러 가지로 감회가 새로웠다.

“30여년 수행을 했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하는 상상 속의 이상형이 있어 현실 속의 나 자신과 비교하면 부끄럽다 못해 우울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기념일이든 긴 세월일수록 주위에서 축하를 더 많이 해 주는 이유는 그 주인공이 살아온 날들의 인내와 노력을 함께 감사하고 인정한다는 뜻이지 그의 삶과 인품이 티 없이 완전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머릿속의 어떤 이상형을(때로는 허상이 될 수도 있는)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비교하느라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지도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나의 이상형’만 생각하느라 비현실적인 삶을 살며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늘 완벽하고 이상적인 모습만 기대하다 보면 인간관계를 자주 그르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 속의 인간과 현실 속의 인간을 비교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많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착하면서도 지혜로운 사람, 똑똑하면서도 겸손한 사람, 이성적이면서도 따뜻한 사람, 정확하면서도 너그러운 사람, 예술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사람, 섬세하고 대범한 사람 등등 온갖 좋은 점을 다 종합해서 이상적인 사람을 그려볼 순 있어도 그런 사람이 현실에서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좀 더 빨리 받아들일수록 행복도 그만큼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특별한 인연을 맺은 가족 친지 이웃끼리 서로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보려 애쓰며 부족한 가운데도 상대가 노력하는 부분을 한껏 격려해 주고, 내가 남에게 바라는 것을 먼저 실천하는 사랑의 용기를 지닌다면 우리의 삶에는 튼실한 기쁨과 평화가 뿌리내릴 것이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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