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피플]<23>프로기사 서봉수 9단

입력 2003-06-19 17:43수정 2009-10-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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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한일 프로기사 골프대회에 출전해 호쾌한 드라이버 티샷을 날리고 있는 서봉수 9단. 동아일보 자료사진
“연습장으로 아무 때나 오십시오. 늘 있습니다.”

인터뷰 약속을 잡는데 편한 시간에 그냥 오란다. 기원 대신 골프 연습장으로 출근이라도 하는 것일까.

프로기사 서봉수 9단(50). 바둑에서 9단이면 입신의 경지다. 그렇다면 골프는?

“2년 전 처음 골프채를 잡은 후로 지금까지 연습공을 30만개는 쳤을 겁니다.”

하루에 보통 5시간 동안 400∼500개의 공을 때린다는 얘기. 그가 정기회원으로 다니는 코리아CC연습장 관계자에 따르면 매일 90개짜리 박스 5개를 다 비우고 나서야 가방을 싼다고.

그의 골프 연습은 시작부터 특이하다. 웨지로 가볍게 몸을 푸는 게 보통인데 그는 간단히 체조를 한 뒤 드라이버부터 잡는다. “새벽에 필드에 나가면 보통 워밍업이 안 된 상태에서 티샷을 해야 하잖아요. 연습할 때부터 몸이 뻑뻑한 상태에서 실전 적응 훈련을 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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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건강이 무척 나빠진 그는 2001년 2월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늘 앉아 있어야 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프로기사에게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골프를 꾸준히 계속하자 약했던 기관지와 심장이 좋아졌고 스스로 ‘육체연령은 65세’라고 했을 만큼 형편없었던 체력도 붙었다.

독학 바둑으로 반상에서 ‘잡초’ ‘된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서 프로. 골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쇼트게임은 연습장에서 남들 어깨 너머로 익혔다. 골프와 관련된 것이라면 TV, 비디오, 책을 가리지 않았다.

“바둑 배울 때와 비교하면 돈 많이 썼죠. 고수가 한번 급소를 짚어주면 실력이 금세 늘 것도 같은데….” 제대로 기초를 닦지 않아 폼은 다소 어색하지만 “자신의 체형에 맞는 편한 스윙이 중요하다”는 게 서 프로의 스윙 철학.

베스트 스코어는 올 4월 리츠칼튼CC에서 세운 89타. 엄청난 연습량을 생각하면 다소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운동에는 워낙 소질이 없습니다. 주위에선 100타 깨기도 힘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보기 플레이가 목표였는데 점수가 줄어들면서 이제는 싱글 골퍼로 눈높이를 한 단계 올렸다는 게 서 프로의 말.

반상에서 철저한 실리바둑을 추구하는 서 프로. 골프 역시 공격적인 플레이보다는 ‘안전 운행’ 스타일이다. “방향성이 괜찮은 편이며 OB는 거의 없다”는 말대로 좀처럼 페어웨이를 벗어나지 않는 ‘또박또박 골프’.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한일 프로기사 골프대회에 출전, 골프 경력 28년이라는 일본의 가토 마사오 9단에게 2홀 남기고 3홀차로 이겨 ‘토종’의 자존심을 지키기도 했다. 당시 주위에선 일본 프로기사 중 골프 최고수인 우주류의 다케미야 마사키 9단 같은 과감한 장타를 겸비한다면 몇 점은 쉽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올해로 입단 33년째인 서 프로는 바둑과 골프는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한다.

“공배 메우고 일어서기 전까지 모르는 게 바둑이듯 골프도 장갑 벗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완착이 패착으로 연결될 수 있어 한 수 한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한 샷 한 샷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쯤 되면 바둑 뿐 아니라 골프도 ‘도사’급이 아닌가.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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