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의 경영과 인생]<25>설계 차별화가 승부수

  • 입력 2003년 3월 23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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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음식을 준비할 때, 비만으로 고민하는 자식이 먹을 것과 치아가 약한 할머니가 드실 것을 별도로 요리한다. 이런 배려는 기업이 제품을 설계, 생산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유럽의 고속도로는 속도제한이 거의 없으면서 지형 때문에 상하좌우 굴곡은 심하다. 따라서 유럽 차의 설계는 순간적 가속(加速)능력을 높이고 신속한 운전조작을 용이하게 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국토는 광활한데 고속도로의 속도제한은 심하기 때문에 크루저(cruiser) 개념의 부드러운 승차감을 중시하는 설계가 발전했다. 이처럼 제품은 그것이 사용되는 각 지역의 환경특성에 따라 설계되어야 소비자의 환영을 받는다.

소비자가 느끼는 필요와 기호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계속 변한다. 우리나라 신발의 역사에서 ‘꽃신’은 결혼식, 회갑연 같은 경사 때 애용되던 상류사회 용품이었다. 김용신의 소설 ‘꽃신’을 보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 제품이 겪는 무상(無常)을 느낄 수 있다. 세월이 만들어내는 이런 무상은 자동차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다. 1970년대에는 1, 2차에 걸친 석유위기로 자동차의 소형화 추세가 시작됐고, 이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여하가 기업간 승패를 갈라놓았다. 일찍이 소형차를 생산해온 유럽이나 일본에 제휴기업이 없었던 크라이슬러사가 1980년대 초 경영위기를 맞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에너지절약 차원의 소형화가 디자인 측면에서는, 차체는 작으면서 실내공간은 가능한 한 넓게 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이런 노력은 엔진실의 용적 축소를 위하여 엔진을 횡치시키는 기술, 후륜구동을 전륜구동으로 바꾸는 기술개발로 나타났다. 협소한 국토와 도로사정으로 일찍부터 소형차 설계기술과 디자인을 연마해 온 일본이 1970년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1980년대는 일본 제품이 계속 상승세를 타면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 기업들이 일본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일본의 경영방식을 배우려고 노력한 시대였다.

소형차 개발에 뒤늦어 위기를 맞았던 크라이슬러는 미니 밴 개발에 사력을 기울였다. 미니 밴은 화물용으로만 생각되던 밴(Van)을 레저(leisure)용으로 개념을 전환, 성공을 거둔 차로서 다른 회사에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크라이슬러의 미니 밴 성공에 자극받은 포드사는 1985년 공기역학적 개념의 차(Aerostar)를 내놓아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로써 에어로 폼(aero-form)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됐다. 에어로 폼은 심미적 차원뿐만 아니라 공기저항을 줄이는 ‘효율적 스타일’이라는 합리성이 인정되면서 전 세계가 풍동(風洞) 실험을 거쳐서 자동차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에는 차들이 (70년대의 상자 모양을 탈피하여) 곡면을 사용하는 유선형으로 바뀌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라는 사상이 확산되면서 지역적 문화특성을 강조하는 차별화 전략이 비교적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자동차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주어 문화적 차이보다는 차라리 브랜드와 차량의 개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메이커들은 소비자의 취향조사에서 스타일링의 정답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 아예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위 컨셉트 카(concept car) 개발에 과거 어느 때보다 열을 올리고 있다. 다양한 구조와 디자인을 실험하는 방법론이 채택된 것이다.

지금까지 자동차를 예로 설명했으나, 환경 차이가 설계의 다양화를 요구하고, 시대의 흐름이 소비자의 기호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다른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각 지역의 자연환경이 요구하는 필요를 설계에 수용할 수 있는 제품 노하우(product know-how),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 계속 변하는 소비자 기호를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서울대 경영대 교수 yoonsc@plaza.su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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