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의 웃음의 인생학]자신을 비웃어라…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7시 31분


요 앞의 연재에서 두 번, 남을 비웃어서 되려 스스로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들 얘기를 했다. 그걸 ‘U턴의 비웃음’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한데 이번에는 자기를 비웃을 줄 알아서 되려 스스로 맑은 마음 되찾게 되는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이건 이를테면 자기정화의 비웃음인 셈이니 비웃음도 그러고 보니, 쉽지 않을 것 같다.

비웃음은 조소(嘲笑)고 비소(鼻笑)다. 우리말로는 코웃음이다. 하지만 냉소나 고소(苦笑)도 비웃음의 별명이다. 이름부터 이렇게 다양하니, 그 속낸들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기 정화의 비웃음인들 왜 없을라고!‘자연에 살리라던 기약 저버린 지 몇 해던가? /속세의 더러움에 시달린 지 어언 20 여년/백구가 비웃는 듯이/울며 울며 다락 앞으로 다가드네’.

이것은 고려의 문신(文臣), 유숙(柳叔)이 개성 가까운 벽란도 나루에서 읊은 시다. 짐작컨대, 이 때 유숙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이었던 것 같다.

곧은 성품이 화가 되어서 요물(妖物)인 신둔에게 참살을 당한 그로서는 벼슬이 되려 욕되고 추악했을 것 같다.

다 벗어 던지고는 홀홀 시골로 돌아가는 나룻가, 생각은 오죽 착잡했을라고! 맑게 곧게 자연을 더불어서 살리라던 옛 맹세가 새삼 가슴을 후벼팠으리라!

‘아! 이 난세(亂世)에 왜 벼슬하고는 스스로 더럽혔단 말인가?’

그러는데 갈매기 소리가 귀를 때렸다. ‘꼴 좋수다! 낄낄…’ 꼭 그렇게 비웃는 것 같았다.

새 울음 하나에도 자성(自省)할 줄 아는, 맑은 마음이 아니고는 이럴 수 없다. 별 것 아닌 작은 사물, 작은 일을 낱낱이 자기 양심을 비추는 거울로 삼을 줄 아는 사람에게 비로소 있을 ‘자기 비웃음’이다. 그건 소리 없는 통곡을 겸한 자기비웃음이다.

이같이 사소한 계기에도 자기를 비웃을 줄 아는 사람을 남들은 함부로 비웃을 수 없다. 한데 지금 세상에서 남들을 비웃는 사람은 흔해빠졌어도 자신을 비웃는 사람이 흔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세상 자체가 아예 비웃음 사서 마땅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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