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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지중해의 전설 '와인'

입력 2002-11-14 17:43업데이트 2009-09-17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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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예술품과의 조우는 인간과 인간 사이 만남 이상의 연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도 내 귀에 들리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음향이 되어 버리고, 베스트셀러일지라도 아직 연이 아니면 감동이 반감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거장 렘브란트의 작품을 접한 날은 그야말로 시의적절했다.

파리에 살던 시절 어느 날,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 렘브란트의 초상화만 거의 전량을 모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 길로 밤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넘어가 허름한 숙소에서 아침을 기다렸다. 미술관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한 갤러리 안 공기는 눅눅하고도 차가웠고 처음 눈에 들어온 렘브란트의 모습은 젊은 날의 자화상으로 그 오만함과 혈기가 캔버스 너머로까지 흘러넘쳤다.

제1 전시실에서 제2, 제3전시실로 옮겨가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그의 자화상은 렘브란트 아닌 ‘인간’의 생을 파노라마로 보여줬고 마지막 전시실의 어두운 코너에 이르러서는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그려진 힘없는 노인의 얼굴이 나를 맞았다. 화가 자신이 유명을 달리하기 얼마 전까지도 붓칠을 했다는 그 작품은 젊은 날의 철없는 거센 기운은 다 빠진 채 장기간 몸 담았던 연극무대를 정리하는 노배우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도주의 탄생-야사

인간의 탄생이 여러 갈래로 설명될 수 있듯이 와인의 탄생 역시 그 설이 분분하다. 그 중 하나가 ‘노아의 방주설’이라 할 수 있는데 얘기인즉 이렇다. 깨끗해진 지상에 방주를 내린 어느 날, 노아는 망중한을 즐기다가 실없이 웃고 있는 염소를 보았다고 한다. 행복해 보이는 염소를 따라가 이유를 알아보니 발효를 시작한 포도덩굴이 원인이었고 노아도 그 포도즙을 마신 후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딱히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맞는 듯 아닌 듯 아무튼 ‘설’은 재미있다.

또다른 설은 고대문명이 싹튼 크레타섬으로 옮겨간다. 따스한 지중해 바람에 생활은 풍요로워지고, 술부대에 와인을 담은 선원들은 대리석이며 기타 토산품을 싣고 로마제국을 드나들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로마 시내에 혈색이 발그레한 섬사람들이 오가니 그들의 생명수인 포도주는 로마 상류층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오늘날에도 이탈리아는 와인 생산량 세계 1, 2위를 다투는 와인강국으로 전통을 잇고 있다.

●포도주의 탄생-양육 과정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새 생명이 생기고 몇 계절을 기다려 하나의 인간이 태어난다. 태어난 생명은 입가에 흘려지는 따뜻한 젖의 온기, 엉덩이를 보듬어주는 후덕한 손길,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보는 눈앞의 형형색색 이미지들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고….

사람이 자라난 환경은 훗날 어떤 향기가 나는 인간이 되느냐의 관건이 된다. 밭을 일구어 씨를 심고 싹이 돋아나면 몇 계절에 걸쳐 양분과 물을 주어 결실을 보게 되는 포도의 탄생도 인간의 그것과 흡사하다. 밭의 비옥한 사랑, 알맞게 어루만져주는 바람, 젖 물리듯 촉촉히 적셔주는 강우량이 딱 들어맞아야 예쁘고 튼실한 포도로 성장하게 되니 말이다.

같은 종자를 심어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해마다 맛이 다른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탱탱히 무르익은 청포도, 적포도는 수확하여 으깬다. 포도원마다 비밀스레 전해 내려오는 비율에 따라 단일 또는 여러 종의 포도를 섞어 발효를 시작한다. 이때 물 한방울 안 섞이는 포도주는 포도가 땅으로부터 흡수해서 뿜어내는 수분이 전부인 알칼리성 음료가 된다. 적포도, 청포도를 한데 섞어 발효시키다가 적포도 껍질에서 색이 우러나기 직전 걸러내 주면 화이트 와인이, 발그레할 때 걸러주면 로제 와인이 되며 그대로 깊은 적색이 나도록 두어 버리면 적포도주가 된다. 그렇다면 불과 며칠 후면 맛볼 수 있다고 떠들썩한 보졸레누보(beaujolais nouveau)란 무엇일까?

●햇술

프랑스의 보졸레 지방에서는 포도밭의 대부분을 가메이(gamay)라는 품종이 차지하고 있다. 이 가메이란 포도는 적포도 중 가장 농도나 맛이 엷은 종이라 할 수 있다. 숙성에 따른 발향의 한계가 비교적 얕은 가메이 포도주는 본디 가진 맛과 향이 짙지 않아서 일조량이나 기후의 변화에 의한 당도나 산도의 변화가 도드라지게 구별된다.

숙성시키지 않은 햇포도주이니 깊고 찬란한 맛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세월에 따른 프리미엄이 붙지 않아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다가 햇과일주로 한 해의 수확을 자축한다는 축배의 성격이 가미되어 흥을 돋우기에는 제격이다. ‘누보’란 프랑스어로 ‘새로운’의 의미. ‘보졸레의 새 술’이라는 뜻의 보졸레누보는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 자정에 출하된다.

껍질이 야들야들한 햇포도로 만든 보졸레누보는 그 맛이 심하게 떫거나 시지 않아서 음식과 매치하기에 수월하다. 한식의 메뉴는 너무 매운 음식들을 빼고는 대체로 무난히 어울리는데 특히 기름기를 쪽 뺀 수육이나 만두, 돌솥비빔밥 등의 음식들은 최소한의 지방질과 드세지 않은 밑간으로 신선한 보졸레누보와 맛이 잘 어울리는 메뉴이다.

치즈나 과일과 가볍게 즐기려면 단단하고 우유맛이 진한 치즈 대신 말랑하고 연한 질감의 치즈가 햇와인의 농도와 맞는다. 과일 역시 신맛이 강하지 않은 단감이나 대추 등 달콤하고 씹는 맛이 좋은 과일을 권한다. 응용할 수 있는 간단한 안주거리로는 감자나 고구마, 또는 단호박을 푹 익힌 후 으깨어 간을 해서 크래커에 바르거나 치즈를 녹여 만든 가래떡졸임 등이 있다. 호두나 기타 견과류를 박은 곶감 등의 한과류와도 곧잘 어울린다.

좋은 밭에서 태어나 좋은 물 마시고 자란 포도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한 병의 포도주가 되지만 임자를 만나서 코르크 마개가 열리는 순간 경매에 나온 최고가의 와인이든 싸구려 식당의 와인이든 그 와인 인생의 끝을 맞게 된다. 겁없는 청년기를 지난 후 오래 익어 힘 빠진 눈으로 나를 마주보았던 렘브란트의 초상화처럼 와인도, 사람도 모두모두 나그네 인생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빈 손으로 왔다가 모두 똑같이 빈 손으로 간다.

미술관 옆 와인바

예술과 함께 만나게 되는 와인의 향은 미적 이미지와 겹쳐져서 오래도록 간직된다. 렘브란트의 거작이든, 길거리 시인의 시화전이든 내 마음만 열려있다면 감동은 배가 되어 와인맛을 돋우어 줄 것이다.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미술관 내 혹은 곁의 와인바들.

박재은

1. 국제갤러리의 와인바

최근 문을 열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방의 설계로 편안하고 깔끔한 분위기. 산지, 와인품종, 가격별로 꼼꼼히 갖추어진 와인리스트가 장점이다. 02-735-8442

2.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의 빌레스토랑

한적한 평창동 길을 걷다가 미술관을 둘러본 후 허기진 속을 달래기에 좋다. 식사하며 부담없이 마시기에 적당한 와인리스트다. 간단한 이탈리아 요리를 곁들여보자. 02-3216-1020

3. 서울옥션하우스의 Sah

청담동에 있는 서울 옥션하우스의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상설전시와 경매가 진행된다. 우연히 들러 현대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심란한 색채를 보며 와인을 마신 날 이후 좋아진 곳이다. 와인 가격이 합리적이다. 02-512-5707

보졸레누보의 친구들

●호박장어 크래커

단호박 200g, 양념장어 50g, 단무지 약간, 소금, 후추

1. 단호박은 푹 삶아서 속만 파낸 뒤 체에 받쳐두어 물기를 제거한다.

2. 1을 소금, 후추로 간한다.

3. 단무지는 손톱 크기로 썬다.

4. 크래커에 단호박을 넉넉히 바르고 양념해서 구운 장어를

한 조각씩 썰어 올린 후 단무지 한두조각으로 장식한다.

●가래떡 치즈 졸임

굵은 가래떡 3가락, 간장 1큰술, 물엿 1큰술, 미림 약간, 설탕 약간,모차렐라 치즈 100g

1. 가래떡은 간장, 물엿, 미림을 섞어 발라가며 바짝 굽는다.

2. 1에 굵은 설탕을 약간 뿌리고 센 불에 한번 더 지져서 겉면을 바짝 지진다.

3. 2에 모차렐라 치즈를 뿌려 녹인다. (이미 떡이 뜨거우므로 저절로 녹기도 하지만 오븐을 160도로 달구어 살짝 녹이면 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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