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제주도식 미역 야채 수프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6시 11분


/신석교 기자
/신석교 기자
바다는 육지를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평생을 두고 바닷가 모래만 핥아 내린다. 위력적으로 꿈틀대는 이 거대한 물덩어리가 나누는 하늘과의, 땅과의 대화는 주술적이며 리드미컬하다. 해산물이 한창 물오르기 시작하는 쌀쌀한 어느날, 바다로 가자. 인적 드문 공터에서 장난치는 연인들마냥 서로의 움직임에 정신없는 바다 물결과 모래펄 사이에 시샘에 찬 내가 서 본다. 여기는 제주도.

제주의 모든 먹을거리에는 물기가 흐른다. 볕 좋은 날의 한라봉이나 무화과는 손으로 꾹 누르면 단물이 줄줄 흐르고 사시사철 모습을 보이는 각종 어패류나 해초류에는 유난히 기름진 바닷내가 가득하다. 나직나직한 가옥들 하며 풍만한 귤나무들이 평화로운 제주의 모습은 6·25때 서귀포로 피난 왔던 이중섭 선생의 거작 ‘서귀포의 환상’ 속에 이미 오래 전에 담겨졌다. 캔버스를 뚫고 걸어나올 듯 생생한 ‘소’그림으로 떠올려지는 화가 이중섭은 평안도 태생으로 하 수상한 시절에 제주도로 피해 와 작품활동을 했다. 서귀포시의 ‘이중섭 거리’에 보전되어 있는 선생의 초가집은 서글픈 행색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평짜리 쪽방에서 창호지 문틈으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높은 건물에 가려지지 않아서 좋지만, 해질녘 홀로 그방에 들렀던 필자는 청보라로 물내리는 한자락 하늘빛에 눈이 매웠다.

허름한 극장과 여인숙이 나란히 자리한 골목을 오르면 문 열린 어디선가 들려오는 ‘뽕짝’ 메들리가 분위기를 잡고. ‘오메기술 있어요’라 쓰여 있는 어느 창가로 나는 눈을 돌린다. 좁쌀을 익반죽하여 떡을 빚고 솥에 쪄내면 ‘오메기떡’이 되는데, 이를 손으로 주물러 으깬 다음 누룩가루와 섞어 따끈한 아랫목에서 발효시키면 입안에 착착 들러 감기는 오메기술이 완성된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도새기고기’(돼지고기)를 안주삼아 한모금 두모금 넘기다 보면, 이중섭 선생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술에 미친, 시대에 지친 어느 젊은이의 마음이 된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친다.’

-이중섭 작 ‘소의 말’ 전문

<2002년 오늘의 요리>

제주의 많은 음식 중 ‘몸국’이란 이름은 그 어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몸’이란 ‘보자반’이라 불리는 해초류의 일종으로 연한 것을 취하여 쓰는 제주지방의 식재료. 돼지뼈를 달인 기름진 국물에 ‘몸’을 넣고 양념한 ‘몸국’은 해초류 특유의 향미가 돼지의 누린내를 없애고 매끄러운 국물맛은 살려준다. 뼈에 붙은 돼지고기 한점도 귀하던 옛날, 많은 양의 몸을 섞어 양을 불린 몸국은 여럿이 나누기 좋은 잔치음식의 하나였다 한다.

몸국에서 힌트를 얻은 오늘의 요리는 수프인데, 봉지들이로 파는 돼지뼈로 국물을 내고 토마토소스와 월계수잎, 매운 소스와 대파로 간을 살려 시큰매콤하다. 여기에 구하기 수월한 미역을 넣어 보았다. 다진 마늘이 섞인 돼지뼈 국물에 큼직한 깍두기 크기의 감자와 당근이 씹히는 이 음식은 우리식의 감자탕과 흡사한데, 여기에 풀어넣는 한줌의 미역이 국물맛을 개운하게 걸러준다. 여기에 오메기술 한잔이 더해지면 안성맞춤이겠지만, 오늘은 모처럼 와인을 곁들여 볼까 한다.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집어내는 핵심은 와인의 모체가 되는 포도의 종을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땅마다 기후마다 제각기 다른 맛으로 뻗어나는 수많은 포도종 가운데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라는 어려운 이름의 포도가 있다. 설명을 해야할 때면 ‘G자로 시작되는 이름 긴 놈’이라고 돌려서 소개하는 이 포도는 떫거나 신맛보다는 비교적 단맛이 튄다. 진한 단맛이 아닌, 잘 익은 황도밭을 지날 때 또는 빨간 샐비어 화단에 물을 줄 때 느낄 법한 연하고도 넓게 퍼져드는 단향이다. 이런 섬세한 향이 약간은 찬 듯 마셔야 잘 살아나므로 수프를 끓이는 동안 냉장고나 얼음통에 넣어두길 권한다.

이중섭 선생의 서귀포시에서 내륙으로 올라와 그대로 내달려 강원도의 화진포까지 가보자. 남한 최북단에 있는 화진포 해수욕장에 이맘때쯤 가면, 송림에 둘러싸인 해수욕장 뒤편으로 바다와 이어지는 영담호수가 내안으로도 흘러들어 올 듯 매력적이다. 이곳의 쌀쌀한 정취는 영화 ‘파이란’에서 한껏 살아나는데 취업을 위해 위장 결혼을 하게 되는 중국인 노동자 파이란은 서류상의 남편에 불과한, 달랑 반명함판 사진 한장으로 간직된 삼류 건달 강재를 향해 무작정의 정을 키운다. 파이란의 죽음 뒤 전해지는 서툰 한글 편지에서 사랑하게 되니 혼자인 게 힘들어져 버렸다고,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독백하는 장면은 바다라는 배경이 편지의 일부처럼 완벽한 무대가 되어버린다. 나 자신이든, 그걸 표현해주는 예술이든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행불행이 동시에 내 목을 조여와 나를 미치게 한다. 사진 속 낯선 남자에게 시를 쓰며 죽어간 파이란처럼, 광기로 응어리진 표현에 지쳐 미쳐버리는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처럼.

▼동양의 맛 해초류 퓨전음식에 제격▼

칼로리는 낮으면서도 영양은 풍부한 해초류는 조금만 섞어도 요리의 향미가 부드러워져서 퓨전메뉴를 개발하기에 제격인 재료다. 예를 들어 콩소메처럼 크림이 섞이지 않은 맑은 수프류에 해초를 넣으면 국물맛이 시원해지며 감칠맛이 산다. 샐러드에 다시마튀각을 몇개 얹으면 아작아작 씹는 맛도 좋고 섬유질 섭취도 할 수 있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식초, 소금, 설탕에 살짝 무친 해초를 피클 대신 곁들이면 소화도 잘 되고 느끼함도 적어진다. 이탈리아 요리 ‘리조토’에 김가루를 살짝 뿌리면 동양적인 향이 가미되어 이색적이며, 구운 김에 치즈를 말아 먹어도 간단한 술안주가 된다.

박재은

●재료

육수용 돼지뼈 200g, 토마토 150g, 양파 1개, 감자 2개, 당근 1개, 대파 3분의 1 단, 월계수잎 3장, 다진 마늘 2분의 1 큰술,

식용유 약간, 토마토소스(또는 케첩) 2큰술, 허브 약간, 핫소스 2분의 1 큰술, 소금, 후추, 말린 미역 2분의 1 컵.

●만드는 방법

1. 냄비에 식용유를 달구어 다진 마늘을 볶다가 돼지뼈를 지진다.

2. 1에서 뼈주위에 붙은 살코기들이 겉익으면 감자, 당근을 넣고 토마토 소스에 볶는다.

3. 2에 생수 3컵을 붓고 대파와 월계수잎을 넣어 팔팔 끓인 다음 불을 줄여서 계속 끓인다.

4. 토마토는 잘게 다져서 잘게 다진 허브와 후추에 버무려 두었다가 3이 걸쭉해지면 섞어 넣는다.

5. 불려둔 미역을 꼭 짜서 물기를 빼고 4에 넣은 뒤 소금, 후추, 핫소스로 간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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