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리포트]3만개의 감동 사연 뉴욕 달린다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6시 09분


파멜라 피키 박사(앞줄 왼쪽 두번째)와 12명의 유방암 환자들이 걷고 뛴 끝에 2001년 뉴욕마라톤을 낙오자 없이 마무리짓고는 환호하고 있다. 왼쪽은 뉴욕마라톤 광고판./사진제공 미국암협회
파멜라 피키 박사(앞줄 왼쪽 두번째)와 12명의 유방암 환자들이 걷고 뛴 끝에 2001년 뉴욕마라톤을 낙오자 없이 마무리짓고는 환호하고 있다. 왼쪽은 뉴욕마라톤 광고판./사진제공 미국암협회

뉴욕의 11월은 마라톤으로 시작한다. 뉴욕 시내에 나붙은 33회 뉴욕마라톤 광고판의 주홍빛 하트가 사람을 잡아끈다. 시작하기 쉽고 그래서 쉽게 그만두는 달리기, 다시 하자고 붙잡는 듯하다.

11월 첫 일요일인 3일 아침 뉴욕. 설렘에 잠을 설친 3만명의 다국적 마라토너들이 몸을 풀면서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출발선으로 모여들 것이다. 이들은 뉴욕의 5개 보로(borough·뉴욕시의 행정구)를 모두 거쳐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로 골인하는 42.195㎞를 달리게 된다. 1976년 대회 때부터 뛰어온 코스다. 응원시민 250만명과 행사 지원을 자랑으로 여기는 자원봉사자 1만2000명, 뉴욕시청 직원 수천명도 어엿한 ‘마라톤행사 참가자’다. 세계 각국의 수 천만명이 TV를 통해 마라톤을 지켜볼 것이다.

뉴햄프셔주에 사는 주부 엘사 스트롱(43)은 처음으로 마라톤에 나선다. 작년 ‘9·11테러’ 때 유나이티드에어(UA)93기에 탔다가 숨진 언니 린다 그론룬드(당시 46세)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승객들은 납치범에 저항했으나 UA93기는 결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추락했다.

스트롱씨는 운동을 좋아했던 언니를 못잊어 하다가 문득 마라톤을 생각해내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녀는 UA93기 승객 희생자 40명의 가족에게 ‘마라톤으로 삶의 의지를 키우자’는 e메일을 보냈다. 동참자는 숨진 남편의 사업을 떠맡아 바쁘기 만한 도로시 가르시아(53) 등 15명. 절반은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다. 앞에 ‘그들(희생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럴 것이다’라는 글을, 뒤엔 희생자 40명의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입은 참가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사는 키 1m48의 마가렛 오카요(23)는 뉴욕 마라톤코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작년 대회에서 2시간24분21초로 대회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여자부 우승을 따낸 그녀는 상금 8만달러를 받았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뛴다. 아홉이나 되는 동생들을 공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더 벌어서 땅을 사고 집을 여러 채 지어야 한다.

하프마라톤에서 그저 그런 성적을 내고 있던 그녀는 1996년 이탈리아 전문가의 눈에 띄어 2년간 훈련을 받고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올 4월 보스턴마라톤까지 제패한 그녀는 3년간 마라톤에 집중할 생각이다. 막강 군단 케냐의 동료 선수들, 설욕을 벼르는 세계의 톱 랭커들과 그녀의 한판 승부가 곧 시작된다.

워싱턴에 사는 앤디 셀든(46)은 뉴욕마라톤을 10차례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1999년의 3시간44분20초로 3만1785명 가운데 6598위. “뉴욕마라톤에서 1위를 할 때까지 뛰겠다”는 농담을 즐기는 그는 올해 추첨에서 탈락해 베라자노 다리와 퀸스보로 다리를 뛰어서 건너지 못하게 됐다. 뉴욕마라톤에는 정원의 3배가 출전 신청을 하기 때문에 추첨을 통해 출전권을 준다. 출전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다. 탈락한 그는 출전 선수들에게 “남성들은 아랫도리와 젖꼭지에 바셀린 같은 것을 충분히 바르고 뛰어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달리다 보면 옷에 쓸려 무척 아프니 조심하라는 얘기다.

베티 로슨(59)은 4차례의 마라톤을 걸어서 마친 경력이 있다. 볼티모어의 메릴랜드대 의대 병원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던 작년 봄 그녀는 이 병원 파멜라 피키 박사와 의기투합했다. “마라톤을 하자.” 피키 박사는 자신의 환자들 중 희망자 12명을 모집했다.

대부분 마라톤은 난생 처음이었고 오르막길 걷기도 힘겨워했다. 훈련은 7개월간 일주일에 4차례, 한번에 5∼8㎞. 5명은 달리기, 8명은 빨리 걷기 연습을 했다. 주말훈련은 처음 13㎞로 시작해 매주 3㎞씩 더해나갔다.

드디어 2001년 뉴욕마라톤 대회일인 11월4일. 다행히 화창한 날씨에 뒷바람이었다.

대부분은 3분가량 뛰고 1분간 걷는 ‘갤러웨이 방식’으로 코스를 따라나섰다. 피키 박사는 달리다가 힘겹고 괴로울 땐 ‘장애물이란 목표에 대한 집중력을 잃을 때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것’이란 말을 떠올렸다. 13명 모두 중도포기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따뜻한 격려는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이들의 기록은 4시간19분부터 로슨씨의 7시간39분까지.

3만명이 3만개의 스토리를 빚어내는 뉴욕마라톤은 1970년에 시작됐다. 첫 대회에선 1달러씩 내고 참여한 127명 중 55명이 센트럴파크를 네 바퀴 돌아 완주했다. 이 대회 창립자로 ‘시민마라톤의 아버지’라 불리는프레드레보우(1932∼1994)가 1958년 47명으로 시작한 뉴욕 로드러너스(NYRR)는 회원 3만8000명의 세계 최대 달리기 클럽으로 성장해 매년 100개 이상의 시민 달리기대회를 주관한다. 뇌암과 싸우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한 레보우의 달리기 인생은 오늘도 세계 구석구석에 ‘긍정적 중독자’들을 확산시키고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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