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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 그사람]성석제 소설가/신병훈련소 시절 내무반장

입력 2002-10-06 18:04업데이트 2009-09-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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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 훈련소 내무반장의 성은 기억에 없지만 분명 이름은 복중(腹中)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6·25전쟁때 국군으로 입대해 전사한 뒤 자신이 유복자로 태어났던 까닭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군인 체질이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반의 어느 봄날, 나와 모(牟)씨 성을 가진 내 친구는 우리가 막 치운 쓰레기장의 빗자루 같은 몰골로 그 위대한 내무반장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C급 작업복 차림인 내 손에는 훈련소의 기간사병이 간밤에 마시다 버린 보드카 병이 들려 있었고, 내무반 동기인 모의 손에는 보드카 병의 바닥에 조금 남은 술이 담긴 병뚜껑이 들려 있었다. 우리는 막 그 병뚜껑으로 한 잔씩 보드카를 빨아먹고 난 참이었다. 그 날 대한민국 최고의 내무반장은 우리, 특히 나의 썩어빠진 정신에 새 살이 돋게 한다는 특수훈련을 실시했는데 병을 물고 쓰레기장을 박박 기며 바닥을 다지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모와 나는 훈련소 동기들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았고 같은 학번이었다.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키와 덩치가 유난히 큰 모가 중대 기수가 되어 2내무반에 배속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복중’ 하사가 통치하는 2내무반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 내무반장은 내무반 바닥에서 한 번의 도약으로 침상에 서 있는 훈련병 서너 명의 뺨을 찰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능력을 점호시간마다 과시하고 또 단련했다. 유별나게 단체 생활에 적응을 못하던 나는 남들이 기피하는 쓰레기장 청소를 자원하면서까지 밖으로 겉돌았다. 그런데 내가 언제 어디서 개인행동을 하건 ‘복중’ 반장은 귀신처럼 파악하고 독수리처럼 날아와 갖가지 폭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모는 나를 따라다니거나 도우려다가 ‘복중’ 하사의 무자비한 폭격에 나보다 더 심하게 당했다.

내가 근래에 알게 된 이론에 의하면 공포와 스릴에 직면한 인간의 뇌에서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시련과 환난을 함께 겪은 사람끼리의 사랑이 더 오래 가고 깊어지는 것은 이 물질 덕분이라는 것이다. 빈천지교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인지고!

훈련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내무반장이 나보다 한 살쯤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는 아직 모른다. 어쨌든 그는 나와 모의 우정을 쓰레기장 바닥처럼 꼭꼭 다져주고 금석(金石)으로 굳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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