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일본인들의 신은 어디에 있는가´

  • 입력 2002년 7월 12일 18시 21분


도쿄에서

◇일본인들의 신은 어디에 있는가/시마다 히로미 지음/치쿠마신서 2002년

일본 사람들은 흔히 설날에는 신사에서 첫 참배를 하고, ‘오봉(お盆)·8월 15일전후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연중 행사)’에는 절에 가서 성묘를 하며(일본인들의 무덤은 대개 절에 있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집을 지을 때는 신도의 간누시(神主)를 불러 축문을 읽고 축성을 하며, 장례식은 절에 가서 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는 등, 갖가지 종교 의식이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서로 상충하는 일이 없이 두루뭉수리하게 한데 어울린다.

이 때문에 일본은 다신교의 나라이며, 기독교적인 일신교는 일본적인 풍토에는 도대체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진정한 의미의 일신교적인 종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열등감과, 반대로 일본에는 외국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고유의 종교가 있다는 배타적인 내셔널리즘, 이 두 가지 담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 번에 소개하는 책은 일본 사람들의 이 같은 일신교에 관한 콤플렉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에서 쓴 것이다. 이 책에는 두 줄기의 큰 흐름이 있다. 그 첫째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교의적으로는 일신교이지만 신앙의 내실을 들여다 보면 다신교적인 면이 있다는 점에 대한 논의이다. 예컨대,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 신앙 등은 일신교적인 교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신교와 다신교가 대립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엘리아데의 종교 이론을 빌려 종교를 고유의 제도·교의의 면에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코스몰로지(우주관)’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비교종교학이라는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흐름을 구성하고 있는 ‘다신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본인의 신앙에는 일신교적인 것이 있다’는 저자의 종교관이다. 저자는 일본인들의 막연한 기도 저 건너편에는 절대적인 ‘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약한 존재로서 인간을 너그럽게 지켜 주는 ‘자비의 신’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은 절대적이고 자비롭기 때문에, 인간에게 벌을 주는 등의 일을 할 리가 없다. 이런 저자의 종교관에 대하여 우리는 일종의 어리광과 함께 뻔뻔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저자의 종교관에 입각했을 때에는 모든 죄와 윤리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문제가 완전히 결락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필연적으로 끝없는 현상 긍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고 궁극적으로 ‘일본인들의 종교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결국 저자가 이 책에서 의도했던 ‘세상에 널리 펴져 있는 일본인의 종교관의 담론에 대한 도전’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일본적 종교관’을 토로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윤리성에 대한 물음의 희박함’이야말로 일본적 종교관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 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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