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지구촌 표정]“한국축구로 아시아가 뭉쳤다”

  • 입력 2002년 6월 25일 18시 42분


“코리아 파이팅” 韓日 공동응원.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코리아 파이팅” 韓日 공동응원.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더 이상 월드컵은 축구 경기만이 아니다. 월드컵에서 한국의 선전이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의 상승으로 직결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4일 ‘한국, 세계 정상 리그의 멤버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월드컵의 충격은 한국에서 경제와 정치의 경계를 넘어 전 사회로 파급되고 있다”면서 “필사적인 선수들과 열렬한 응원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와 경제에 등장한 활력과 자신감을 반영한다”고 썼다.

이 신문은 특히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에는 현대화되고 젊은 사회가 탄생했다”면서 “안정환과 설기현이 세계 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삼성 LG 현대자동차와 같은 한국회사들이 국제적 브랜드로 성장, 기존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CNN방송은 24일 미 최대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그랜트 월 기자가 ‘한국에 보내는 러브레터’를 인터넷에 게재했다. 월 기자는 이 글에서 “나를 명예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불러달라”며 서울에서 보낸 32일을 즐겁게 회고했다. 그는 비가 오던 날 신호등에서 자신에게 우산을 받쳐주던 중년의 신사와 지하철에서 피곤에 지쳐 잠이 든 자신의 친구에게 자장가를 불러준 한 나이 든 여성 등을 소개하며 한국인의 친절함을 극찬했다.

▼관련기사▼

- 도쿄-네덜란드서 ‘코리아∼코리아’
- 슈퇴르 "한국인 투혼에 감명" 삭발응원

월 기자는 이 밖에도 △김치를 먹을 때 이마에 흐르던 땀 △한국 대표팀의 기술과 사정없이 몰아치는 경기력 △감격에 겨운 TV 해설자의 멘트 △응원단들의 붉은 티셔츠 △안정환 선수의 ‘오노’ 세리머니 △미국의 16강 진출에 공로가 가장 커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도 될 박지성 선수 △호텔에서 보이는 경치 등을 ‘한국에서 사랑하게 된 것들’로 꼽았다.

홍콩의 주요 일간지들도 일제히 한국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일간지 명보는 23일 사설을 통해 “한국 선수들의 필사적인 의욕은 한국인의 민족성과 매우 큰 관계가 있다”면서 “한민족은 강직하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쉽게 타협하지 않고 단결력이 매우 강해 온 민족이 한마음이 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래서 한국은 외교면에서도 실력이 자기보다 훨씬 센 일본에 대해서도 절대 지지 않고 다툼이 있는 독도의 주권을 끝까지 수호한다”고 썼다.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23일자 사설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 발생했다”면서 “지역동맹이나 다자간 협력도 아닌 축구 경기에 의해 아시아인들이 처음으로 뭉쳤다”고 평가했다.

경제일보는 24일자 사설에서 “경기장 밖 한국 국민의 응원 모습은 홍콩인들이 더욱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이번 월드컵은 한국이 어떻게 경제위기를 극복했고 일본이 왜 저조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보도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일간지 오스트레일리언은 24일자 ‘오! 오! 오!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월드컵 성공으로 엄청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악마들’ 때문에 한국은 누구나 명예 호주시민”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월드컵 개최 전까지 한국은 개고기나 먹는 별종 정도로 취급받았지만 월드컵의 성공으로 문화적 편견을 벗겨냈고 축구에 대한 통념을 깨뜨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올라가면서 심판판정을 둘러싼 시비도 빠르게 가라앉거나 불만을 제기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경기 패배의 원인은 유럽 각 팀에 있다”며 유럽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한국 특혜 음모론’을 일축하고 나섰다. BBC라디오 해설자인 앤디 그레이는 “한국팀은 내가 본 가장 ‘정직한’ 팀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훈련돼 있다”며 “한국팀이나 거스 히딩크 감독 모두 특혜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25일 월드컵 준결승전 한국-독일전을 앞두고 독일의 분위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스키 리조트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리는 세계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오타와를 방문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이날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식일정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장 크레티앵 캐나다 총리는 24일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슈뢰더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 석상에서 “한국과의 월드컵 준결승전을 보기 위해 정상회담에 늦을 예정이죠”라고 가볍게 물은 뒤 “행운을 빈다”고 덧붙였다.

슈뢰더 총리는 출국 직전 “독일은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며 한국전 승리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9월 총선에서 야당 총리 후보인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사당 당수도 독일이 한국을 이겨 결승전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독일이 연장전에 골든골을 넣어 1-0으로 승리하는 쪽으로 내기를 걸겠다”고 말했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총선을 앞두고 상대방의 정책을 헐뜯고 있는 두 총리후보가 월드컵 축구 경기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독일팀은 서울에서 산소탱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한국의 속도와 고강도 압박 그리고 신속한 역습은 독일의 소문난 스태미너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